애마, 나의 오랜 친구

by 김 경덕

나의 오랜 친구 애마

오랜만에 나의 사랑하는 애마와 함께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서 하룻밤 외박을 했다.
애마 등에는 야외에서 며칠을 지내기에 필요한 몇 가지 장비들이 항상 실려있다.

소형 텐트와 Air matress 침낭 그리고 간단한 조리 도구들이다.
출발하기 직전 계절에 맞추어 갈아입을 여벌 옷 몇 가지만 더 챙기면 된다.

이제는 그동안 동고동락해온 애마도 많이 늙었다.

주인도 덩달아 늙어 노인 반열에 들어서 버렸고....
십 수년 함께 전국 팔도와 섬들을 누비고 돌아다닌 나의 애마는 올해로 만 14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100수를 훨씬 넘긴 나이다.
계절 불문 날씨 불문 큰 불평이나 큰 고장 없이 애마가 달린 주행거리가 무려 44만 km나 된다.
금년 들어와서는 늙은 애마를 배려한답시고 한동안 장거리 주행을 자제해 왔었다.
사실은 작년 말을 시한부로 결별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쌓인 정 때문에 얼른 처리를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미루다가 그만 오늘까지 함께한 모양새가 되었다.

지난주에 제법 큰돈을 지불하고 몇군데 화장을 시켜 주었더니 몰골이 다시 멀쩡해졌다.
아무리 겉보기가 멀쩡하더라도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언제 어디서 무슨 까탈을 부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장거리 여행을 나서기가 조심스러워 가능한 자제 해 왔었다.

지난달 하순 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딸과 손주들이 보름간 우리 집에서 함께 격리 생활을 하였다.

답답하고 지루한 격리 기간이 끝날 즈음,
가족은 권장 사항이나 강제 격리 대상은 아님, 갑갑증을 참지 못해 나의 애마를 몰고 혼자서만 조용히 집을 나섰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애마와는 마지막 여름 외박이 될 것 같기도 해서 핑계 삼아 서둘러 출발을 한 것이다.
나의 애마는 7인승이라 2,3열 의자를 동시에 접으면 2인용 잠자리가 충분히 나온다.
앉으면 4명이 둘러앉아서 고스톱 치기에도 충분한 공간이 나온다.
애마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숙박이 가능하다.

야영이 적당한 장소에 주차를 시킨 후 여름에는 야외용 모기장으로 몸통을 감싸주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나 다른 곤충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훌륭한 침실이 된다.
겨울철에는 모기장 대신 텐트 외피를 덮어서 바람과 냉기로부터 보온을 시켜주면 된다.
혹한이 닫쳤을 적에 애마 속에 다시 일인용 텐트를 치고 취침을 한적도 있다.
그러니까 나의 애마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나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전천 후 모바일 호텔이다.

이번 목적지는 고산지대에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계절이라 강원도 인제 곰배령과 정선 만항재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애마의 시동을 걸었다.

횡성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서석, 창촌을 경유하여 오대산 북쪽 자락을 타고 구룡령을 넘어가는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80년대 말 이곳이 비포장 도로일 때 Pony2를 몰고넘어가 보려고 한번 시도를 하다가 하도 길이 험해서 포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초기 88 고속도로보다 포장 상태가 더 양호하다. 구름 위를 한참 노닐다가 양양을 20km 정도 목전에 두고 다시 곰배령 초입인 진동리로 방향으로 우회전을 한 후 한참을 더 올라갔다.
곰배령 답사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탐사로 입구까지 들어갔는데 여기도 개발 바람과 함께 투기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느 유원지나 다름없이 펜션과 국적불명의 이상한 집들이 여기저기 마치 선술집 작부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숨 가빠하는 작은 애마가 잠시 쉴 공간마저 보이지 않았다.
곰배령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나?
곰배령의 실제 답사코스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초입은 실망뿐이었다.
돌아가자!

두번째 목적지인 만항재로!
단숨에 곰배령을 내려왔다.
묵호항에서 물회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후 밤 9시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정선 만항재를 향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만항재는 해발 1300m로 포장된 도로 중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몇 년 전 아내와 한번 다녀간 곳이기도 해서 밤이 늦었지만 만항재 정상 휴게소에서 야영을 하기로 내심 작정하고 올라갔었다.
태백시를 지나고 나니 빗방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산지대에 흔히 있는 스쳐 지나가는 구름 비 같았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고한을 지난 후 만항재 정상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앞서 가는 차든 마주오는 차든

30여분 내내 다른 차를 한대도 만날 수가 없었다.
만항재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있었던 휴게소나 간이매점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안개비에 파묻혀서 그나마 몇 개 세워놓은 가로등의 불빛마저도 보일 듯 말듯 희미하게 보였다.
불 꺼진 다른 자동차 한 대가 있기는 하지만 속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친근 보다는 왠지 으스스한 기분만 들었다.

정상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을 더듬어 보니 여기에서 시

하는 두 갈래 소롯길이 있었다.

하나는 군용 시설로 올라가는 길이라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고 다른 하나에는 혜사 1.8km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 절 쪽으로 가보자, 거기 주차장에서 가서 부처님의 자비를 기대하며 하룻밤을 묵고 가자.
어두운 소롯길로 들어서니 바로 비 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니 애마가 힘들다고

끽 끽 비명을 자꾸 질러된다.
어! 이게 뭐야? 길 한가운데 송아지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서 길을 막고 서있었다.
천천히 다가가니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한참 동안 길 안내를 해주고서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고라니.

조금 더 들어가니 이번에는 산토끼가 폴짝폴짝 뛰면서 길 안내를 해준다.

절까지 가는 동안 이런 이런 고리니 세 마리, 산토끼는 네 마리를 더 만났다.

힘들게 절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여긴 절이리기 보다는 마치 무슨 사이비 종교 비밀 아지트 같았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 그래도 여기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애마의 시동을 껐다.
잠시 긴장을 푼 후 잠자리를 준비하려고 라이트를 다시 켜니 바로 앞 숲 속에서 파란 두 눈이 나타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숲을 헤치고 나타난 놈은 중간 크기의 멧돼지였다.

이놈은 겁도 없이 뭐 먹을 것이 없나 하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차 앞으로 계속 다가왔다.

정말 이곳은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의 별천지 같았다.
호랑이도 나타 날까?
사실 기대보다는 조금은 겁이 났다.
겁이 나는 것은 있지도 않은 호랑이가 아니라 야생 멧돼지였다.

이놈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오면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밤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철수를 결심했다.
여기 올라올 때 지나친 정암사로 다시 돌아가자.

힘들어하는 애마를 한번 달래주고서는 조심조심하여 정암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휴! 야생화 구경 나셨다가 엉뚱하게 한 방중에 야생동물만 실컷 구경하고 돌아왔네....
나보다는 늙은 애마가 더 고생을 많이 했다.
니 주인을 잘못 만나서 야밤에 고생했다.

아니
"애마야 ! 욕봤다"

2020,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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