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 정리

by 김 경덕

신변 정리

이제는 무슨 일이든 자신과 연관이 있었던 신변 잡사들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태풍 바비가 북상 중이라 외출을 할 수가 없어 오전 중에 서둘러 가까이 있는 은행에 갔다.
먼저 하* 은행으로 찾아갔다.
십수 년 전 빈번하게 해외 송금을 해야 할 일이 있어 개설한 외화통장과 30년 전 급여용으로 사용했던 통장이 휴면 상태로 아직도 남아 있었다. 여기다가 당시 은행 직원의
강권에 못 이겨 가입한 주택청약 통장까지 있었다. 모두 말소시키고 나니 34만 몇 천원이 손에 들어왔다. 공돈을 손에 쥔 기분이지만 괜히 창구 직원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다음은 농협, 지방에서 부과된 세금 자동 이체용으로 사용했던 통장과 경로 우대 카드용으로 개설된 통장이 있었다. 경로 카드용에 당시 오만 원을 입금시키고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그만 분실하고 말았다. 아직도 잔액이 700백 원 남아 있었다. 아마 교통약자가 카드를 습득한 후 열심히 사용했었나 보다. 보시를 했다.
두 통장 잔액을 합쳐보니 무려 1,100원이나 되었다. 이번에는 금액이 너무 적어서 창구 직원에게 다시 약간 무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우*은행, 개명 전 이 은행은 나의 첫 직장이다.
그래서인지 통장이 무려 여섯 개나 되었다.
보통, 자유, 고단백, 청약, 외화, 적금, 대출 많이도 남아있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던 보통예금 하나와 외화용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리했다.
정리를 하던 직원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 통장은 거의 50년이 되었는 돼요?"
"아, 그것은 저가 이 은행 입사할 때 사용했던 급여 통장입니다."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설 때 창구 직원으로부터 깍듯한 선배 예우를 받고 당당하게 일어설 수가 있었다.


직접 들고 다녔던 물건도 아닌데 이렇게 통장 하나를 겨우 정리했는데 몸이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렇다.
이제는 움켜쥐고 바둥바둥 거리며 살 나이는 지났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정리할 것은 정리를 하고 살아갈 나이이다.
며칠 전 항상 가까이하며 살아온 선배요 5년 차인 지인이 지방 요양병원으로 실러 갔다. 완괘 후 다시 돌아오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남은 생 순서에 따라 한 계단 내려간 것이다.
어제저녁 뉴스는 7,80대 노인 두 명이 코로나 19 감염으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순서는 없다.
"Except me" 아니라 "Included me" 다.
언제인가는 나도 요양병원이나 응급실이나 아니면 영안실로 실려갈 것이다.

장마가 지칠 줄 모르고 지속되고 거기다가 태풍까지 겹치니 자꾸만 더 우울해진다.
답답해지는 마음을 우울해지는 기분을 신변에 펼쳐 놓은 잡다한 일들을 하나둘 정리하며 달래 본다.
오늘은 또 무엇을 정리해 볼까?
곁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이번에는 나 하고 자기를 가리킨다.

2020, 8, 27
태풍 바비가 지나간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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