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사

by 김 경덕

정방사 해우소


"낮에는 청풍이 밤에는 명월이"고 읊은 옛 시인의 시조 한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둥근달이 잠깐 얼굴을 내밀더니 오늘 새벽에는 열어 놓은 창가로 시원한 청풍이 기분 좋게 들락거린다.

달 동안 지속된 장마 끝에 느껴보는 청량감이다.

계절은 벌써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과 뭉개 구름이 낯설게

느껴진다.

날씨가 좋은 날 가끔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하면 아내는 이 핑계 저 핑계로 항상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웬일인지 아내가 먼저 시동을 걸었다.

아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서둘러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무작정 자동차를 고속도로 위에

올려놓았다. 서둘다 보니 마땅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강원도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제천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에 두 어번 다녀온 적이 있는 청풍 리조트가 생각이 나 그쪽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최종 목적지로는 청풍 리조트 인근에 있는 정방사로 하고 다시 마음속으로는 정방사 내 해우소에 한번 더 가보기로 내심 결정을

하였다.


수년 전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근에 있는 ES 리조트에 가서 하룻밤을 머문 후 다음날

금수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리조트 바로 뒤 능선을 타고 올라가 금수산 자락인 신선봉까지 올라갔다. 하산 길 약 7부 능선쯤에 정방사라는 생소한 이름의 작은 사찰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 틈 사이에 병풍 같은 바위를 뒤로하고 겨우 자리 잡은 이 사찰의 형태는 마치 독수리 요새 같아 보였다. 아래로는 청풍 호반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는 겹겹이 쌓여 있는 충청의 고만고만한 능선들이 우리 눈을 더욱 편안하게 해 주는 명당자리였다.


안내 간판에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원통보전 뒤 암반 사이로 흐르는 약수로 목을 축인 후 해우소를 찾아 내려갔다.

해우소 역시 본전 바로 10m 아래 절벽을 겨우 비집고 만들어 놓았다.

허술한 해우소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부 형태가 조금 이상하였다. 일반 화장실과는 반대 방향으로 용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출입문을 등지고 앉고 보니 적당한 높이의 통창이 내 눈높이에 맞추어 환히 열려 있었다. 눈을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제야 해우소의 용변기를 반대로 해 놓은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살짝 해우소 안을 곁눈질로 들여다보는 노송 아래로 보이는 청풍 호반의 풍경도 절경이지만 그 뒤로 겹쳐져 있는 능선들과 그 끝자락에 보이는 월악산의 암반 정상 부분이 더욱 절경이었다.


누가 이러한 기발한 발상으로 이러한 해우소를 만들어 놓았을까?

이 절을 처음으로 여기에 창건한 의상대사일까?

아니면 지난날 어느 노 주지승이 여기서 볼 일을 보면서 속세를 무심코 내려다보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추측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해 보았다.

순간 이곳에서 득도를 한 노승으로 변신을 한 후 스스로 근엄한 명령을 한 번 내려보았다.

"앞으로 이곳에 해우소를 만들 때 필히 그 방향을 거꾸로 하거라!"

"그 이유는 묻지 마라! 깨닫는 자만 깨달을 지니라."

그때부터 이 절의 해우소의 변기 방향은 항상 반대로 설치되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전국의 사찰 중 여기 해우소보다 더 나은 곳은 없었다.

해우소라고 하기보다는 또 다른 하나의 법당으로 느껴질 정도다.

다시 찾은 정방사 해우소에서 그동안 코로나 19로 쌓인 근심 걱정을 모두 다 절벽 아래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요즈음 걱정들 많으시지요?

정방사 해우소에 한 번 다녀오세요!



2020년 9월 4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Come Sept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