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마의 공식 등록 이름은 09수 2066이고 통칭은 7인승 SUV 베라크루즈이다. 나와 함께 동고동락을 한 기간은 1개월이 모자라는 만 14년이고 그동안 달린 주행거리는 달까지 가는 길보다 더 먼 439,964km이다. 14년 전 차를 인수하자마자 갓 결혼한 딸 신행길에 이 차의 핸들을 처음으로 잡고 대구로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딸과 사위도 나 못지않게 이 차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돌아올 때는 동해안을 따라 올라오면서 연이은 아들의 대학입시 낙방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던 한 가족을 동해에서 만나 격려의 메시지까지 전달한 화려한 이력도 이 차는 지니고 있다.
현역 시절에는 국 내외 여러 지역에서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의 차를 소유하거나 장기 렌트로 운전해 볼 기회가 남들보다 많이 있었다. 그동안 운전을 해 본 차들을 하나씩 짚어보면 국내에서는 포니 2., 엑셀, 아반테,소나타, 그랜져, 제네시스 그리고 코란도, 소렌토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였던 나의 애마 베라크루즈다. 해외에서는 Corona, Benz, Land Cruiser, Cressida 등이다. 80년대 자동차에 대한 나의 작은 꿈은 사실 Grand Cherokee Jeep이였다. 젊었을 때 이 차를 몰고 전국 비 포장도로 곳곳을 누벼고 다녀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처음으로 렌트한 차량이 바로 Grand Cherokee였다. 그때 이 차를 한번 몰아보고서는 단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 운전해본 느낌으로는 힘이 아주 좋고 넓은 시야에
승차감도 좋았으나 연비가 너무 낮았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국내에서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차가 언제 나오려나 하고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당시에 유일한 사륜구동인 코란도를 먼저 구입하여 몇 년간 몰고 다녀보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현대가 버린 SUV 모델을 자매사인 기아가 주워서 서둘러 출시한 소렌토란 이름의 SUV가 시중에 론칭이 되었다. 나오자마자 기다린 차가 바로 이런 차구나 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그랜져를 처분하고 이차로 바꾸어 탔다. 그러나 초기에 출시한 소렌토는 여러 곳에 결함이 너무 많았다. 제조사로부터 정식 리콜도 두 번이나 당하였다. 소렌토에 대한불만이 잔뜩 쌓여있던 중 현대에서 2000년 중반 야심작으로 Premium급 대형 SUV를 내어 놓았다. 이차가 바로 내가 오랫동안 사랑한 애마 베라크루스이다. 출시하자마자 얼른 이 차로 다시 갈아탔다. 조금 부담스러운 차량 가격이었지만 당시 딸을 시집보낼 때 들어온 축의금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상당히 땜 막음 할 수가 있었다. 당시에 퇴직 후 조그만 사업체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이 차 구입은 나의 역마살끼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지방 여행이나 산행길등 기회가 날 때마다 아니 주말 새벽마다 무작정 차를 몰고 집을 나갔다. 신문에 새 도로 새 다리가 개통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 메모해 두었다가 무조건 찾아 나셨다. 특히 뒷 좌석을 접으면 두 사람이 잘 수있는 공간이 충분히 나왔다. 몇 가지 장비만 챙겨 놓아두면 전국 어디서나 주차하는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전용 호텔방이 되었다. 지금은 차박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지만 십 년 전만 해도
골 빈 사람만 이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 심지어 한 겨울에도..
승차 정원이 7명이기 때문에 두 가족이나 세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길에는 내 차가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처가 쪽 성묘길에는 매년 전용 차량으로호출을
받았다. 거기다가 노련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는 기사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일 수밖에....... 다섯 자매가 함께 움직이는 장거리 성묘길에는 이 차만 한 차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줄로 자매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장거리 골프장 갈 때나 소규모 인원끼리의 산행길이나 교회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지방 여행이나 행사 길에 셀 수 없을 만큼 이 차가 동원되었다. 참으로 열심히 전국 이곳저곳에 자주 고개를 내밀었다. 제주도만 해도 한번을 추자도 까지 세 번씩이나 배를 타고 건너갔다 왔다. 특히 서 남해의 섬들을 많이도 섭렵하고 돌아다녔다. 이 차를 많이 이용해본 주변 일가친지나 어르신들이 섭섭하게도 나에게 보다는이 차한테 고마웠다는 인사를
더 많이 하였다.
거기다가 이 차는 은퇴 후 취미로 배워두었던 목공 작업을 십 년 전에 양평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할 때부터 툭하면 뒷 의자를 접치고 화물차 역할을 훌륭히 대행하였다. 3년 전부터 40만 km를 넘기고 나더니 노령화 현상이 급격히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제법 큰돈이 들어갔다.
바로 새 차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 새 차를 구입할 때는 아내에게 먼저 물어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차를 구입하기로 내심 작정을 해 두었다. 그래서 아내의 의견에 따라 오랜만에 새단형인 제네시스를 구입하게 되었다. 새 차를 구입한 후 바로 헌 차인 베라 크로즈를 처분해야 하는데 너무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쉽게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새로 구입한 새단 형 차에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너무 낮고 좁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로 헌 차의 처분을 차일피일 미루어온지가 벌써 2년이 지났다. 지난봄 헌 차에 돈을 조금 들여서 새 단장을 시켜놓았더니 제법 타고 다닐만했다. 그래서 얼마 전 까지도 열심히 전국 각지로 몰고 다녔다. 이 차가 너무 낡아서 겁이난 다는사실 몇 년 전 강원도에서 나 없이 아내가 혼자 운전을 하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아내를 제쳐두고 금년 여름에도 나와 차, 단 둘이서 강원도 깊은 산골과 서해의 한 작은 섬에서 두 번이나 차박으로 밀애를 즐기고 돌아왔다. 한 달 전 이 차의 얼굴이 찌그려졌다. 갑자기 앞 유리에 금이 생기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갔다. 안전 운행이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처분을 망설였다.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을 눈치로 알아본딸이 거금(?)을 후원해 주어서 앞면을완전하게 성형 수술할 수가 있었다. 다시 나의 애마는 멀쩡한 얼굴로 변신을 하였다. 조심스럽게 근거리만 운행하던 중 지난 주일 양평에 있는 교회까지 조금 멀리 다녀왔더니 뒷바퀴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일찍 평소에 다녔던 차량 정비소에 차를 입고시켰다. 수리 견적서를 받아보니 최소한으로 수리만 하는데도 백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이 차와 친숙해있던 정비사마저도 사장님 이제 그만 타시고 폐차시키세요 라며 폐차를 완곡하게 권유하였다. 남한테 더군다나 차량 전문가한테서 이 소리를 듣고 나니 정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폐차 소리를 듣는 순간 괜히 눈물까지 나려고 하였다.
아, 이제는 놓아주어야겠구나. 그래, 그만 보내주자.
아무 미련 없이...
1km 남짓한 집에 까지 마지막으로 운전을 해 오는 동안 그동안 이차와 함께한 정 때문에 만감이 교차를 하였다. 내리기 전 조용히 핸들을 쓰다듬어 주며 한마디 남겼다. "그래, 고맙다." "14년 동안 큰 속 한 번 썩히지 않고 무사고로 우리 가족과 또 이 차를 이용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 주어서..." 눈물도 한 방울 흘려놓고 내렸다. "Bye bye and have a sweet dreams! Oh, my lovly Veracruz "
2020, 9, 26 P.S 추억을 기리기 위해 앞, 뒤, 측면 사진도 한 장씩 찍어서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