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by 김 경덕

가을이 깊어만 가네.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완연한 만추다.
어제 포레스트힐에 갔다가 동쪽 방향 가평 자락에 자리한 운악산을 서쪽편인 포천 쪽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두서너 번 올라가 본 적이 있는 산이다.
현리 쪽에서 오르면 바위틈 새로 난 오름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험난하여 악이라는 꼬리가 붙어 있는 경기 5악 중 하나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바라보니 의외로 평안하고 부드러운 느낌마저 드는 평범한 보통 산이였다.
악산이 아니라 마치 지리산 자락 같은 평안한 육산이었다.

그동안 짧은 세월 동안 산이 저렇게 스스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쨌든 올려다보는 내가 그동안 많이 변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도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음은 지나간 세월 동안 묵히고 삭힌 경륜 때문에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또한 쇠하여진 기력 때문에 자꾸만 움츠려 들어가는 허약해진 마음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바라다 보이는 사물이나 대상들이 예전과는 자꾸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운악산 어느 자락에 제법 낙폭이 긴 폭포가 하나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비가 자주 오는 장마철에 가야만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제대로 구경할 수가 있다. 이름하여 건폭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건폭이 되어 가는 것 같다.
한 때 우렁찼던 물소리 아니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구경하려 찾아오는 사람, 아니 친구도 점차 줄어든다.
지금이 바로 건폭이 진행되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인지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찾아갈 곳도 없는 만추의 떨어진 낙엽 같은 신세다.
저 산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며 찾아온 친구를 기쁘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내년 봄을 기대하여 조용히 겨울 동면에 들어갈 것이다.
"저 산은 내게 올라오라 하네"

올라오라며 자꾸만 작은 손을 내밀고 있다.


왜 올라오라고 나를 부르고 있을까?
나는 이 길을 그냥 내려가고 싶은데...

,2020, 10, 31
시월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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