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을 지났는데도 코로나 19가 계속해서우리를 속이고 있다. 아니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지난 주일 모임에서 함께한 지인이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받았다는 통보를 주 초에 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 주는 자의 반 타의 반 두문불출할 수 밖에 없다.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점점 이웃과의 불신의 폭이 깊어가니 이제는 하루의 삶 자체가 슬퍼진다.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주말 약속이 취소되어 어제저녁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불을 켜고 책을 펼쳤지만 이제는 눈의 초점마저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아 계속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 거실에 나와 앉아 이어폰을 끼고 들을만한 음악을 찾아보았더니 갑자기 차이콥스키의 비창이 눈에 들어왔다. Classic 음악사에 가장 슬픈 곡이라는 별칭이 이 곡에 붙어있다.비운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과동시대 사람이다. 소싯적 학교 앞 이발관에 가면 푸시킨의 시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항상 액자 속에 걸려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프하거나 노하지 마라
,........'
푸시킨의 이 시 뒷부분이 오히려 요즈음 현실을
잘 반영해 놓은 것 같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난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
Corona 19 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이 순간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누구를 탓할만한 상대조차도 없다. 한때는 이 정권의 방역 정책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시들해져 버렸다. 상대할만한 상대가 없으니 지난 일들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이 이렇게 힘들고 답답할 때는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 수가 있을까? 지난여름 못 견디게 답답하여 무작정 밖으로 뛰쳐 나가 산속에서, 때론 바닷가 작은 섬에서 하룻밤을 혼자서 세워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뿐 다시 돌아오면 후유증만 더 깊이 남았다. 이제는 그냥 이 현실은 담담하게 가슴속에 받아들이고 가슴앓이를 하는 편이 훨씬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것이 바로 수수께끼 같은 우리 인생의 역설적인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날 아침 그래도 함께 울어줄 음악이 우리 곁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차이콥스키 비창 6번을 다시 들으면서 답답한 현실과 아픔을 함께 달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