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ms, Strasbrug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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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을 세울 때까지는 Strasbrugh를 제외하고 Reimes, Colmar라는
도시는 이름조차도 몰랐었다.
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나니 머릿속에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여행의 보너스이다.
프랑스(파리)를 거점으로 하여 인근 세 나라 즉 이태리, 스페인, 영국을
들락거리기로 하였다.
이번 구라파 여행의 마지막 주는 파리에서 Rent car를 빌러 지중해가 있는
남불 프로방스 지방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계획과 실제는 항상 차질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 경험이 많을수록 이런 차이를 최소화시키는 Know how가 쌓이게
마련이다.
아직도 경험이 부족하여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전체 일정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영국에서 돌아와 마지막 주에 묵을 파리의 Gay Lussac 가에 있는
옥탑방이 다른 여행객의 예약과 겹쳐져 있었다.
우리가 양보하기로 하고 서둘러 여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에든버러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4시 반이라
늦은 시간에 초행길을 자동차로 멀리는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파리에서 하룻밤 묵기에는 호텔비가 너무 비싸고......
2시간 이내의 적당한 도시를 찾다 보니 파리 동쪽 약 150km에 있는
"Reimes"이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와 이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작정하였다.
전혀 생소한 도시라 이번 여행에서 아내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준 스마트폰으로
자료를 뒤져보니 이곳 성당에서 영국과 백년전쟁 후 불란서 왕권을 간신히 계승한
샤를 7세의 대관식이 치러졌으며 이후 역대 불란서 황제들의 대관식이 계속 이곳에서
거행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성당은 파리 Notre dame과 같은 이름을 가졌으며 규모가
파리 Notre Dame보다 훨씬 더 크고 높다고 하였다.
'Good!"
큰소리는 쳤지만 막상 프랑스에서 Rent car로 운전을 하려고 하니 약간의
걱정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 핸들을 잡아본 경험은 많지만 프랑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기다가 불어가 정말 까막눈이다.
발음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다음 정거장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어보고
안내 방송과 비슷한지를 비교해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발음은 실제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상황, 오를리 공항에 있는"Eurocar "에서 푸조 308을 빌린 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는 서둘러 지상으로 차를 몰고 올라왔다.
에든버러에서 비행기가 2시간이나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복잡한 파리를 벗어나야 하고 또 Reimes까지 먼 초행길을 달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파리 교외 석양의 전원 풍경이 또 다른 감회를 우리들에게 안겨다 주었다.
누구라고 말할 필요 없이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동쪽으로 차를 몰고 갔기 때문에 지는 햇살이 뒤편에 있어서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를 더 잘 볼 수가 있었다.
높은 산이나 계곡은 없고 마치 소싯적 피곤하여 누워서 쉬고 계실 때 보았던 울 엄마의
허리 모양 같은 나지막한 능선들이 계속 나타났다.
이 능선들 끝이 스카이라인에 걸쳐져 있어 원근의 색깔 감도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일전에 부석사에서 바라본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속에 누워 있는 푸른 밀밭과 반듯하게 머리를 땋은 듯한 포도나무 밭,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또 다른 과수나무들 가끔 나타나는 노랑 유채밭들이 5월의 석양빛을 받아
천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막힌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파리는 여러 번 출장길에 다녀갔지만 시골 풍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 이래서 프랑스구나!
음악이 있고, 그림이 있고, 훌륭한 조각품이 있었구나.
음악가는 이 풍경을 선율로, 화쟁이는 이 전경을 그림으로, 망치를 든 사람은 조각품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구나!
내가 이곳에 태어났더라도 한 가지는 했을 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 빠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두 시간여를 경치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달려 Reims 시에 들어가니
밤 10시가 가까이 와 있었다.
친절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B&B 주인의 추천을 받아 가까이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더니 11시인데도 불구하고 홀은 거의 다 차있었다.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고 하여 세 사람 모두 각자 풀코스 요리를 시켰다.
우리도 이곳 젊은 파리지엔들의 흉내를 내기 위해 제법 값나가는 알자스산
와인 한 병도 추가로 주문하였다.
"BRABO!"
매일 먹고 마시고 놀려만 다니는데 꼭 대단한 일을 치러 낸 기분이었다.
내일은 500km 이상을 달려가야 하니 좋은 와인으로 긴장된 맘을 풀어야지,,,,,,
"늦은 밤 Reimes의 먹자골목"
"Norte Dame in Reims"
"Reims의 Norte Dame 성당"
다음날 아침 일찍 성당을 찾아갔다.
전면을 보수 중이었으나 반듯하게 솟은 안정된 성당의 모습을 바라보니 나도
대관식을 하고 싶었다.
"무슨 대관식을 했느냐고요?"
"나는 노욕의 황제니까?"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 조용한 성당 내부에 기도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촛불을 밝히고 잠깐 기도를 드리고 나오며 아내더러 당신도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끝내고 나오는 아내에게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짓궂게 물어봤더니
"우리 남편 개떡 같은 성질 좀 없애 달라"라고 기도했단다.
나는 아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기원했는데,,,,,,,,,,,
믿음의 차이인가? 아니면 연륜의 차이인가?
아내도 칠순이 되면 나처럼 기도를 허게 되리라고 굳게 믿으면서
서둘러 차를 Srtasbrugh를 향해 출발 시켰다.
2014년 7월 8일
-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