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행(8)

by 김 경덕

Colmar(8)


자동차에 내장된 Navigation을 찍어 보니 오늘 달려가야 할 거리가 500km가 넘었다.

생면부지의 불란서 시골길을 하루 종일 운전해서 달려가기에는 만만찮은 거리다.

1시간여를 달려 Mertz 시 인근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소형 불란서 지도책 한 권을 구입하였다.

우리 같은 70 세대는 아무래도 전자 Navi. 보다는 지도가 훨씬 더 쉽게 눈에 들어온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생소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방문할 지역의 산과 들의 모습들이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옛날 지도는 등고선으로 표시해 놓았지만 요즈음 지도는 색깔로 고저를 표시해 놓아 더 쉽게 눈에 들어온다.

정오를 조금 지나 후 Strasbrugh에 들어갔다.

라인강을 동쪽에 두고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규모가 제법 크고 상당히 역사가 있는 도시다.

새로 방문하는 지방은 알게 모르게 그 지방에 대한 선입관이 머릿속에 먼저 그려지기 마련이다.

아내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이 도시를 꼭 방문해 보고 싶어 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독일과 프랑스 양국 문화가 합쳐져서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들어는 갔지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그래서 큰 도시인 Strasbrugh는 스쳐만 지나가고 여장은 40km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Colmar에서

풀기로 하였다.

이 도시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수차례에 결 쳐 주인(국가)을 바꿔치기했다.

이전 중세기에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지만 가장 최근 기록은 2차 대전 후 독일령에서 프랑스령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독일풍 성당도 있고 주택가가 있는가 하면 '프티 프랑스'라는 프랑스풍 아름다운 마을도 있었다.

국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전쟁 중에도 파괴가 비교적 적었다니 권력과 부 앞에 쉽게 허리끈을 풀어

헤친 奸婦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요란하게 치장은 했으나 화장기가 바래서 추하게 느껴지는 나이 든 여인의 모습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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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덮어 씌운 Starsbrugh 역"


대표적인 곳은 이곳 역사 건물이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역 같은 옛 건물 위에다 온통 유리로 덮어 쉬어 놓았다.

도시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니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오늘 밤 이 도시에서 잠자리를 펴지 않기로 한 것은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았다.

철이 철인지라 가는 곳마다 인파가 넘쳐났다.

주요 관광지 몇 곳을 서둘러 돌아보고는 서둘러 더 남쪽에 자리한 Colmar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Colmar, 뒤늦게 이 도시의 이름을 알았지만 기대가 큰 이곳은 오랭 데파르 망주의 주도이다.

파리 Luxangbrugh 공원에서 이 도시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뉴욕 허드슨강 입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조각가 바르 톨디가 이 고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2000 고지 이상의 높은 산 아래 자리 잡은 이 도시에 처음 들어설 때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고마 고마 한 작은 집들에다 중심가 성당 앞에 미리 예약해 둔 B&B를 찾아가기까지는 정말 별로였다.

차도 들어갈 수 없는 뒷골목 오래된 목조 건물 2층에 자리한 숙소를 힘들게 찾아낸 후 여장을 풀자마자

서둘러 민생고 해결을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골목을 돌아서니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높지 않은 4,5층의 튜더식 예쁜 목조 주택들 사이로 맑은 시냇물(Lauch 강)이 흐르고 있었고

아직 어둠이 깔리기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옥외 테이블에 많은 관광객이 나와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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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쁘다"

가는 곳마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규모로는 Venice, Strasbrugh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여기는 격이 달라 보였다.

아무리 훌륭한 관광지라도 찾아오는 손님의 질이 떨어지면 그 격도 함께 떨어지기 마련이다.

줄 서기 좋아하는 일본인, 소란 무뢰 통 중국인, 어깨 치기 달인 한국인 같은 단체 관광객은 보이질 않았다.

대부분 인근 지역이나 독일 등 유럽에서 온 서 온 나이가 지긋한 관광객들이었다.

놀이보다는 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갔다, 보았다, 재미있었다, "

방문지 방점 찍기에 조급한 우리들이 본받고 배워할 시사점이 많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질 좋은 알자 스산 백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을 하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올려다본

어느 집 이층 창가,

저 집 속에는 분명히 아름다운 저녁의 쉼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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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번 여행이 막바지에 다 달아있다.

이틀 밤만 지나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Colmar에서의 둘째 날은 차로 이곳 산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현지에서 얻은 관광 안내도를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 겨울 스키장과 함께 고 산지 리조트가 여러 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지도로 봐도 어지러울 정도의 산복 도로가 여기저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다 그 처서 빗 길을 무렵 쓰고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치즈의 고장 Munstar 거처 산으로

올라갔다.

1265m 고지에 오르니 산 아래는 구름이 덮여 있었지만 봉우리들은 저마다의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막힌 東佛 산악 경치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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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에 아직도 눈이"



칠순 여행의 마지막을 이런 산에서 장식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젊은 시절 산에 반해서 당시는 토요일이 정식 출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해는 연간 46회나 산행을 나간

기록이 있다.

비록 25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이었지만 후회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제 막을 내려야만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한 생을 살아오면서 뒤돌아보면 모든 체험은 어느 시기에 그 정점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해외여행의 정점을 십 년 전 헝가리 호숫가에서 찌릿하게 자축했지만 아마도 이번과 같은 자유여행을 다시

계획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려가자"

"산을 내려가며 이제는 쓸데없이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자"

오늘의 삶이 이렇게 풍족했으니 오늘 일은 오늘 걱정하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그런데 내일 파리 오를리 공항까지 650km를 Rentcar로 달려가야 할 일이 아무리 내려놓고 싶어 해도

계속 어깨에 매달려 있다.

다시 한번 더 여기에 와서 저 눈 덮인 정상에 올라 수련을 해볼까?

아직도 살아서 통통 튀는 열정은 있으나 삶의 특히 여행의 내공은 많이 얕아진 것 같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길을 옮겨 놓으면서 언제 가는 다시 한번 더 여길 찾아와야겠다는 욕심을 마음속

깊이 감추면서 떠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2016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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