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보리심을 일으킨 선남선녀들을 보살이라고 한다. 이들이 대 자비심을 일으켜 일체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성불의 여정에 들어섰을 때 두 가지 길을 만나게 된다.
"이 세상을 꿈"으로 보고 절대적인 보리심을 가지고 출가한 수도승의 길과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라는 상대적 보리심 즉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기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깨달을 수 있다는 "반야" 사상과 보시 즉 베풂과 채움으로 깨달음을 향하는 "자비" 사상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일반 수행자인 선남선녀는 어느 길을 택하여 가야만 성불을 할 수 있을까?
수행 보살들이 만나는 최대 난관인데 이것을 보살의 역설이라고 한다. '자비'와 '반야'의 마음을 어떻게 조율하면서 성불의 길로 나아가야만 하나?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실천적 중도의 원리를 몸에 익혀 매 순간 자신을 조율하면서 나아가라. 조율 실력이 점차 향상되면 어느 순간부터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조율을 행할 수 있는 때가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보리심을 타는 것이고 이때부터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성불의 여정을 즐길 수 있다"라고 하였다.
속제(속세)의 불자들이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음을 금강경에 있는 이 대목을 읽고 난 후에 많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 더불어 살아가며 펼쳐내어 보여야 할
이웃사랑과 자비심은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먼저 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선 또는 기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시는 일반적으로 재시, 법시, 무 외시의 세 가지가
있는데 즉 물질을 나누어 주는 것, 진리의 말을 나누어 주는 것, 남에게 용기를 넣어 주는 것이다.
참된 보시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분이 없어지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개입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
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불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보살들에게 가장 필요한 수행 화두는 무엇보다 이웃 사랑과 그리고 베풂과 섬김의 자비심임을 부인할 길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