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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un 11. 2021

구주령

허약한 봄을, 특히 금년은 더 약해 보였다, 밀쳐내고 심술쟁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홀대를 하며 돌려보내고 싶지만 그럴만한 힘이 내게는 없습니다.

그냥 맞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가 나갈게요'

옛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여름을 맞이하려고 서둘러 남으로 내려갔습니다.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어가니 여기는 벌써 여름이 깊었습니다. 지난밤 비로 세수를 한 이곳의 여름은 벌써 신록의 티를 벗고 성숙한 성하의 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춘양을 지나가니 춘양목이 묘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며 지나치는 길손을 유혹합니다.

잠깐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하지만 분칠 한 훤칠한 자태에 칠십 노객은 그만 기가 죽어 버립니다.

잔설을 덮어선 계절에 만났으면 한번 안아주고도 가련만 지금은 계절 탓소나무마저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일월산 밑으로 뚫어진 터널을 들어갔다 나오니 영양입니다.

좌회전하여 동해 방향으로 액셀을 계속 밟고 달리다 보니 금방 구주령 정상입니다.

30여 년 전 백암 온천에 가족과 함께 정초에 들렸다가 겁 없이 비 포장 이 고갯길을 넘어오다 혼이난 기억이 선합니다.

지금은 고속도로처럼 잘 포장이 되어 있네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높고 낮은 령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 구주령은 대관령 옛길 못지않게 돌고 도는 구비길은 장관입니다.

동쪽으로난 내리막 길은 마치 유치원 다니는 개구쟁이 손자가 화선지에 장난을 쳐 놓은 것처럼 제 멋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어지럽지만 재미있네요.

옅은 구름 뒤로 멀리 보이는 동해를 바라보며 후포항으로 부지런히 달려 내려갔습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아직도 바다는 멀리 있는데  비린 냄새와 함께 갑자기 시장끼가 밀려옵니다.


역시 물 때깔은 동해입니다.

꾼들은 이런 물만 바라 보아도 침을 삼킵니다.

수조 속에 펄떡이는 생선들이 목구멍을 한 없이 간지럽히네요.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이나 자비는 잠깐 머릿속에서 지워 버립니다.

킬로반 자연산 광어가 주빈이 되고 들러리로 가자미, 쥐치, 게르치, 부시리에다 멍게, 해삼까지 요란하게 끼어들었습니다.


"자, 한번 칩시다"

코로나를 위하여!

여름을 위하여!


"Love each other

  as I have loved"

비록 성가신 코로나 19나

미운 여름일지라도.......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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