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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un 13. 2021

Tihany

2005년 6월  13일

오늘은 후배 부부와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하는 헝가리 기행 3일 차다.  이곳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를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남으로 내려가 Blaton호수 북쪽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가는 일정이다. 두 시간 반쯤 달리니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가 길 중간쯤 지점에  마치 섬처럼 생긴  Tihany란 작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빛바랜 나지막한 성곽이 있었고 그 속에는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성당 하나가 있었다. 휴식도 취할 겸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차를 호숫가에 주차시키고 성당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성당을 한 바뀌  돌아본 후에

바로 뒤편에 있는 정상까지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정상에는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품위를 갖춘 레스토랑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올라갔는데 그렇게 높지가 않는 돼도 내려다 보이는

시야가 생각보다는 깨나 넓었다.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며 다니는

자유 여행이라 딱히 정해진 일 정도 없다. 여기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여정을 변경하고 다시 호수가로 내려가 Zimmber에 방을 예약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낮에 예약해둔 정상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다시 올라갔다.

 

등나무로 하늘을 가려놓은 야외 식탁은 벌써 깔끔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의 전후 좌우 석양 전경은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와!  무슨 감탄사가 적절한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호수 동편 끝에서는 둥근달이 떠 오르고 서편에는 하루를 못내 아쉬워하며 노을을 등에 지고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정상 주변에 피어있는 라일락 꽃 향기가 미풍을 타고 느낄 듯 말 듯 부드럽게 실려오고 있었다.

노을빛과 달 빛에 반사되는 호수 양쪽의 묘한 물빛과 호수 한가운데의 에메랄드 빛, 도대체 이게 뭐냐?  

이생에서는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넋을 놓고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지금 까지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나 명소를  또래의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찾아가 보았다고 내심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미답지를 망설이지 않고 언제든지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이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한 여행 중에서 최고의 정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기분이 고조되어

"와!  오늘이 최고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자초 지종을 듣고 난  아내가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저녁을 자기가 사겠다고 함께한 후배 부부에게 기분 좋은 제안을 하였다.

기막힌 풍경 속에 차려진 멋진 만찬과 골드빛 헝가리 최고의 와인 이제까지 경험한 여행 중 최고 정점을 자축하는 정말 기분 좋은 만찬이었다.


그리고 수년 후  '아이리스'란 제목의 드라마가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이 드라마 첫 장면에 두 남녀 주연 배우가 처음 만났던 장소가 바로 우리가 앉았던 그 야외 테이블이었다.


지금 아내는 다섯 자매들과 함께 남편들을 모두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구라파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직접 들리지는 않지만 끼리끼리 히히 호호하는 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와 가끔 잠을 설치기도 한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귀국 날자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내일이면 귀국이다.

아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홍어회 한 접시를 막걸리 안주 삼아 깨끗이 비운 후에  아내 기분으로 잠시 전환을 해본다.

아마 지금쯤 아내와 언니들, 동생들 모두 나와 비슷한 기분에 취해있지 않을까?

60 전후의 다섯 자매가 함께 해외여행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생애 최고 정점 여행이 될 이번 여행을 모두 다 즐겁게 마치고 건강하게 무사히 귀국하길 고대해본다.


            2021년 6월 13일

                    2005년 글을 가필하고 일부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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