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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un 26. 2021

성묘 길

성묘 길

여태 전 고향 선산이 산업단지 개발 예정지에 편입이 되었다.

차제에 선산을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물색하고 다녔다. 마침 좋은 기독교 봉안당이 이천에 있다고 해서 발품을 내어 찾아가 보았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 은퇴 목사의 젊은 아들이 이사장으로 있는 리조트형 복합 단지였다. 또 다른 형태의 세습으로 세간의 이목을 기막히게 잘 피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많이 씁쓸하였다.

이곳은 호텔 경영이 메인이고 봉안당은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여 놓은 부대시설에 불과했다.

안내 책자에는 이렇게 멋들어진 문구로 장식해 놓았다.


" * * 낙원 기독교 봉안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없는 세상에 없던 아름다운 공간으로  이곳에 찾아온 산자들이 자연을 즐기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호텔과 정원, 레스토랑, 라이브러리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기독교 구원 사상에다 생과사를 넘나들 수 있다는 개념을 사업에다 접목시켜 놓은  정말 기발한 발상이었다.


선전 팸플릿에는 결혼예식, 각종 가족 모임, 축하 모임 등을 위한 예약 안내로 요란하게 장식해 놓았다. 팸플릿을 보면서 살아생전 장례식을 여기서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작년 말 두 번째 동서가 지병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가셨다. 이천  낙원은 아니지만 아직도 살아남은 세 동서 부부가 먼저 간 동서 묘 성묘길에 함께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전체 일행은 혼자된 처형까지  모두 7명이었다.

산소의 위치가 마침 강원도 주문진이라 동해안 여행의 시발점도 될 수도 있고 종착지도 될 수가 있었다.

일정을 잡다 보니 성묘 후 계획이 더 거창하고 요란스러웠다.

이 판에 호텔식 봉안당을 한번 흉내 내 보기로 했다. 거리는 좀 있지만 숙소인 호텔은 속초에 잡고 정원 산책은 설악산 비선대로 레스토랑은 대포항 횟집촌으로 대충 스케줄을 잡아 보았다.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을 통과할 때 주차장 관리원이 물어보았다.

"경로 아니신 분 있으세요?"

일곱 영감 할망구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뇨!

어느새 동기들 모두가 지공 신세가 되어 버렸다. 생각 없이 먹은 나이를 고려하여 오후 산책은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가장 완만한 코스를 택하였건만 한 명은 시작부터 세명은 중도에서 포기를 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길처럼  하늘 가는 길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다들 쉽게 포기하면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실 동서 관계는 남남이다.

배우자들이 형제자매인 까닭에 타의로 가까워진 사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마다 여자의 발언권이 점점 강해지다 보니 동서 간의 만남도 자연 잦아지고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역설적이다.

자의든 타의든 금년 들어 벌써 세 번째 동기간 집단 탈출이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라도 섬 지방으로 이번에는 성묘를 핑계로 한 강원도 여행이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서 자신이 없을 때 은근히 남에게 무슨 일을 권할 때

"동서 보고 춤추라고 한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동서가 권하면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더라도 여기서는 다른 동서가 춤을 추라고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춤을 추어야만 할 형편이다.


먼저 위 동서는 어떤 경우에도 예의와 언행이 빈틈없으신 창녕 조 씨 가문인 외교관 출신이셨고 다음 손위 동서분은 다방면의 사람들과 폭넓게 교하시며 만년 글을 쓰시는 코알라 타입 느림보 언론인이시다.

이런 경우 그나마 기대를 해 볼 수 있는 바로 손아래 동서가 있다. 애석하게도 손 아래 동서는 은퇴 목사님이시다. 평생을 강단에서 메마른 영혼을 가르치고 지도하신 경륜 때문인지 세상사는 어둡고 매사에 조심스럽다.

위아래 동서들이 춤추라고 일부러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안팎 사정이다.

알어서 스스로 추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일박이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도 제법 많은 춤을 추었고 분탕질도 제법 많이 하고 다녔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먹는 춤이 가장 압권이었던 것 같다.

첫째 날 점심은 그 유명한 횡성의 용둔 막국수, 마침 가는 날이 쉬는 날이라 옆집에서 흉내만 냈다, 저녁은 동해안 활어 생선회 코스, 둘째 날

아침은  속초 명물  황태 해장국과 섭국, 그리고 점심은 경포대 전망 좋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돌아와서는 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다는 냉 소바로 마무리까지 했다.


다음에는 춤을 추러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함께라면 천국까지 가서도 춤을

출 수가 있는데......


높게 날면 멀리 볼 수 있고

멀리 보면 좋은 것을 먹을 수 있고

먹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다시 멀리 걸을 수 있답니다.

걷는 사람에게만 항상 새 길이 보입니다.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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