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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Aug 31. 2021

더불어 삶

더불어 삶


새벽 운동을 하고 들어오니 아내가 식탁 위에다 어제저녁 사다 준 과일로 이쁘게 치장을 해 놓았다.

아내는 2차 코로나 19 백신을 맞은 후 연 사흘 동안이나  밤마다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힘들어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격려한답시고 투자한 돈은 고작 5만 원도  채 안되는데...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기는 지금 매우 행복하단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아내의 행복을 돈을 주고 산 것 같아서 조금 민망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행복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재물 때문일까?  

타고난 외모일까?  건강일까?

아니 자신의 지식이나 권력  때문일까?

이것도 아니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맛있는

음식을 대했을 때의 만족감일까?

목표일을 성취하였을 때 느끼는 성취감 때문일까?


모두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 요소는 될지언정 진정한 실체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이들 모두가 오직 자기 자신 즉 개인에게만  해당되고 더불어 사는 삶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위의 아니 당신이 느끼는  행복이 내가 느끼는 행복과는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IT 대로 들어가면서 물리적인 사용 공간은 점차 개인화되어 가고 영적인 사유 공감은 공동화 내지는 공유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거나 자랑할 수가 없는 시대로 어느덧 세태가 변해 버린 것 같다.

이것은 자기만족이고 때론 자기 과시요 자기 자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구 세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IT 시대이다.

상호 간의 소통이 원활하고 전파력이 엄청나게 빠르다.

현세대에혼자만이 아닌 더불어 행복해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로 변해 버렸다.  

행복은 크든 작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 물이지  결코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의 연기론처럼  행복은

유일한 존재로 혼자만이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을 하면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리지는 구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일 바구니를 만들어 놓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내를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보람을 느낀다. 카톡으로 전송한 그림을 보고 자식들이

이빠 잘했다고 칭찬도 했다.

이렇게 트라이 앵글의 완벽한 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잠시나마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이제부터 더불어 느끼는 행복이 이 시대의

진화 행복 개념이라고 조금 유치한 주장을 하고 싶어 진다. 


"나는 행복합니다" 가 아니라

"우리  행복합시다"로  비꾸어  보자.


  2021, 8,  31

  Come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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