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by 김 경덕

귀가

그동안 목공과 운동으로 혹사시킨 왼손 새끼손가락에 결절이 생겼다.

일상생활에서 까지도 많은 불편을 느꼈다.

구정 전에 수술을 받고 구정 연휴를 이용하여 집에서 쉬면서 회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획대로 결절 수술을 받은 후 4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후 어제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밖에 집을 떠나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내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처음 경험한 전신 마취 수술이라 나도 모르게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한 후에 그냥 잠에 곯아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저녁도 거르고 12시간 이상 비몽사몽 간을 헤맨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물속에서 급류에 떠내려가는 악몽을 꾸다 겨우 눈을 떠 보니 눈에 익숙한 내 집 내 방이었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절로 나왔다.

귀가란 이런 바로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귀가란 단어가 지니고 있는 값진 의미가 머릿속에 깊이 들어와 다시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 생각 없이 들락 거렸던 내 집이지만 매일 건강하게 귀가하는 그 자체가 우리들 삶의 큰 축복이고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마땅한 일인 것 같았다.

내 집은 여느 경치 좋고 멋진 휴양지의 고급 시설과는 비교조차 안되지만 여기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진정한 평안과 쉼이 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 따라 쌓인 나이 탓인가 이런 생각을 다 하게 되다니, 이제는 체력도 마음도 많이 약해졌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덮어 놓았던

묵상 노트를 펼쳤다. 오늘의 묵상 주제를 '귀가'라고 백지 첫머리에 미리 써 놓아 버렸다.


오늘부터 구정 연휴가 시작된다.

귀성인파, 귀성 차량, 귀성 선물 거기다가 귀성 민심까지 "귀"자가

붙은 Homecomers들에 대한 기사가 여기저기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때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명절만 되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기사나 그림을 볼 때마다 함께 가슴 아파해하기도 하였다.


어느 해부터 이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다름 아닌 2014년 4월 14일 일어난 세월호 대 참사 그중에서도 어린 학생들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며칠 후 희생당한 학생들의 빈소가 안산 문화회관에 설치되었으며 내일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된다는 소식을 저녁 9시 뉴스에서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선잠을 깨고 보니 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는지 밖에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서 도저히 잠을 다시 청할 수가 없었다.

특히 엄마와 꺼져가는 목소리로 하는 하는 어느 여학생의 마지막 통화,

"엄마, 이게 마지막인 것 같아,

엄마, 사랑해!"

이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들려왔다.

그래 내가 빈소에 직접 찾아가서 이 학생을 만나 보고 너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마.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새벽 4시에

집을 나셨다.

새벽이라 거리도 한산하고 빈소도 한산했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극장 같은 회관에 들어서니 무대 끝자락에 28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의 고만 고만한 얼굴들이 모두 환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른인 내가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정말 하나님이 이 땅에서 떠나버렸셨나?

흐릿한 불빛이라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씩 더듬어며 반쯤 나아가니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만 돌아설까 하는데 반대편 끝자락 부근 무대 위에 뭔가가 시꺼멓게 올려져 있었다.

궁금하여 다시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가니 검은 물체는 상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희생당한 아들의 영정 사진을 밤새 쓰다듬다가 지쳐 쓸어져서 잠이든 한 희생 학생의 엄마였다

내가 어떻게 그 엄마의 마음을 흉내 낼 수가 있겠냐마는 그 순간 내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이번 명절에도 그 엄마는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밤도 그 엄마는 딸의 마지막 목소리를 지우지 못하고 자신의 베게닛을 눈물로 적시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어린 학생들은 이번 명절에도 귀가를 하지 못한다.


이렇게 귀가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늦게까지 유족들을 위로해준 유명인사가 있어 여기 함께 올려본다. 다름 아닌 우리의 영원한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다.

당시 어느 신문 기사를 여기에 옮긴다.


"박근혜 정부는 자기들 권력 유지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참사를 국민들이 하루빨리 잊어버리기 원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범죄시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는 은퇴 기념식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기념 메달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희생자에게 기부했다.

김연아 선수는 동생 또래의 이들 죽음을 같이 슬퍼했다. 김선수의 슬픈 모습은 슬픔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나 무엇보다 유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의 기쁨보다 더 값진 다이아몬드 메달의 기쁨과 위로를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다.


오늘부터 집 나간 자식들이 명절을 함께 하기 위해 '귀가'를 할 것이다.

나도 어젯밤 물속을 떠 내려가다 간신히 '귀가'를 하였다.

이번 명절에도 유족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아니 영원히 귀가하지 못하는 어린 자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대 위의 그 어머니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며 찾아올 내 자식들과 손주들의 귀가를 조용히 기다리며 지난날 고향에서 나를 기다렸을

부모님의 얼굴도 다시 그려본다.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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