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1)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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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1)


4월 첫 주일날 봄길을 따라 형제자매들과 함께 남도로 내려간다.

성급하게 봄 향기 맡으려 꽃놀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손아래 동서인 장 목사의 은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손위 동서

두 내외와 함께 먼 길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장 목사는 아내와는 같은 70학번이고 나한테는 4년 후배이다.

71년 봄 복학을 한 후 첫여름 방학을 맞이하였다.

역마살 끼가 유달리 많아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모두 접어 놓고 도서관에 들어박혀 군 3년의 공백을 메우고 있을 때이다.

그 해 여름 강원도 홍천으로 하기 봉사활동을 떠난 동아리 회장으로부터

급전이 한 장 날아왔다.

내용인즉

"청와대 이 ** 비서관, 전화번호 333*****"

전화를 한 후 지시를 받아 보세요"라고만 적혀 있었다.

당시는 전보가 가장 빠른 Message 전달 수단이었다.

유신 직후 암울한 시절이라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하라니 왠지

가슴이 조금 떨리기까지 하였다.

전화를 받은 비서관은 친절하게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고서는 바로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방문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시는 옛 경무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초라한 면바지에 속 옷도 없는 남방 하나

달랑 걸치고 헤어진 운동화, 오랜만에 양말은 제대로 챙겨 신었던 것 같았다,를 신고

약간은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갔다.

몇 가지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거친 후 가슴에 방문 명찰을 하나 달아 주더니 그냥

걸어서 경무대 본관까지 올라가란다.

족히 3, 4백 m나 되는 길을 땡볕을 받으면서 걸어서 올라가니 중간중간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본관 앞에 다다르니 비서관이 현관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며 소 접견실로 안내를 해 주었다.

그 해 소속 동아리가 농촌 봉사 활동을 떠나기 전 육 영수 여사가 운영하는

육영재단에도 지원 요청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봉사 활동을 떠난 후 뒤늦게 육 여사의 제가 가 낳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서울에 남아있던 본인이 대신 수령하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육 여사 얼굴도 직접 보고 차도 한 잔 얻어 마신 잊지 못할 경험도 하고 돌아왔다.

이때 전해받은 봉투와 물품을 가지고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가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와 장 목사이다.

내려간 김에 며칠 동안만이라도 후배들과 함께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봉사활동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말없이 조용히 하고 있었던 후배 한 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는데 이 학생이 바로 오늘날 장 목사이다.

이후로 각자의 학업과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던 나날들이라 서로 간에

교신이나 안부도 없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 바쁘게 살아갔다.

79년 늦여름 해외지사 근무 중 장인 회갑연에 참석하기 위해 잠깐 짬을 내어

귀국을 하였다.

당시 대학을 갖 졸업하고 예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처제가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형부, 나 좋은 신랑감 한 명 소개해 줘."

라면서 간곡하게 부탁을 해 왔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지금 장 목사의 모습이 선명하게 먼저 떠올랐다.

연락을 한 번해보고 싶어도 전화번호는 물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다음날 서둘러 출국을 해야만 하는데 누구한테 물어볼 시간 여유조차 없었다.

장인 회갑연은 우리 집 안 뜰에서 오후에 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 여유가 조금 있었다.

아직도 삼송리에 그대로 있는 피닉스 테니스장에 이웃에 살았던 바로 손위 동서와 함께 운동을

하러 나갔다.

두어 시간 운동을 하고 오후 한 시경 가방을 챙겨 나서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연락처를 알고

싶었던 장 목사가 테니스 가방을 메고 라커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인연은 참으로 묘하게도 이루어지는구나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우리는 다음 해에 동서지간이 되었다.

결혼 이듬해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3년간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어 농촌 교회로

내려갔었다.

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좋은 성적으로 독일 유학의 기회까지 주어졌지만 포기하고 본인이

스스로 택한 폐가와도 같이 다 쓰러져가는 경북 금릉군에 있는 시골교회로 내려갔다.

내려간 며칠 후

"형부, 나 못 살아,,,,"

잔뜩 눈물을 머금은 처제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연속 들려왔다.


(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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