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by 김 경덕

회상

고향 집 일로 부산에 내려갔다.

볼 일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새로 개통된 동해선 지하철을 탔는데 종착역이 부전역이었다. 일부러 부전역에 내렸다. 이 역은 지난날 부산에 있었던 동해 남부선 역 중 하나다.

당시 동해 남부선은 부산-초량-부산진-범일-부전-거제-동래-수영-해운대-송정-기장-좌천-월래-남창-덕하-울산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고1 때 나는 경부선 열차 통학생이었고 같은 반 친구는 동해 남부선 통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날 지나갔던 이 노선의 역명과 각 역의 역사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 노선의 역사들은 6.25 때 피해를 보지 않아 전형적인 일본식 역사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삼각형 높은 전면 벽면에 걸려있던 역사 이름, 나무로 가로막아놓은 개찰구, 감색 정복에 붉은 태를 두른 모자를 쓰고 개찰기를 들고 열차표에 구멍을 내어주던 역무원 모두 다 그리운 지난날 추억 속의 전경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부전역에는 그러한 옛 역사가 없었다. 평범한 가 건물 이였다. 역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고 광장을 지나 큰 대로를 따라 내려가면 부산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로가 있었다. 여기는 온천장과 서면을 오가는 지상 전차 정거장 부전역이였다.

역사 서편에는 군부대가 어지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역전 오른 쪽에는 부전시장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4.19가 한창인 시절에 이 근처에서 고3인 사촌 누나와 함께 자취를 했다. 철없는 13살짜리 꼬마 중학생이 몇 푼 들고 찬거리를 사러 이 시장에 자주 나왔다.

지난날 추억을 더듬기에는 너무나 많이 변해 버렸다. 대충 위치만 짐작하고 시장 안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스크를 실외에서는 벗어도 좋다는 엔데믹 2일 차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붐볐다. 항상 재래시장에 가면 좋아하는 어물전을 찾아간다. 찾아가는 중간에 생물 민물고기를 파는 가게가 여러 곳 있었다.

잉어, 붕어, 가물치, 메기, 미꾸라지, 장어에다 자라, 황소개구리까지 산채로 팔고 있었다.

황소개구리만 제외하고 소싯적에 직접 강이나 수로에서 잡아본 경험이 있다.

어쨌거나 이 놈들은 어려운 시절 우리들의 고급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물전이 시작하는 초입에 각종 패류(조개)를 파는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껍질을 깐 담치(홍합)를

열 마리씩 지푸라기 줄에 끼워 매대에 진열해 놓았다. 한 마리의 크기가 웬만한 어른 주먹만 했다. 지금까지 본 담치 중 제일 큰 것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하여 잦은 병 치례로 대단히 병약하여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때마다 담치 미역국과 전복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어릴 적 이웃의 한 할머니는 볼 때마다 재는 전복 먹고 담치 먹고 살아났다고 놀리기까지 하였다.

당시 시골 5 일장에 가면 커다란 담치를 껍질을 깐 후에 끈으로 열 마리씩 엮어서 팔았다.

바로 그 담치였다.

큰 담치는 영양가가 전복보다 훨씬 났다고 한다. 옛 추억과 소싯적 생각이 되살아나 이 가게 앞에 서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주인아주머니가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한 마디 한다.

"사장님, 이 담치요 전복보다 훨씬 맛있고 정력에도 좋심더."

"한 꼬미에 5만 원인데 4만 원에 드릴게요"

아깝다. 당장 사고 싶지만 생물을 사서 이 날씨에 KTX를 타고 서울까지 들고 갈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려다가 다시 되돌아갔다.

"아주머니 택배가 되나요?"

"그럼요"

흥정도 안 하고 10만 원을 지불하고 우리 집 주소를 적어 주었다.

"걱정 마이소, 알아서 해 줄 끼니까"


하루 만에 택배가 도착했다.

생미역까지 덤으로 들어있었다.

정말 대단한 홍합(담치)이다.

몇 마리는 홍합 밥에 또 몇 마리는

미역국에 들어갔다.


지난날 이 담치 미역국 먹고 다시 살아났듯이 오늘은 이 홍합밥, 홍합 미역국 먹고 점점 처져가는 기력을 되찾아야겠다.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코로나 엔데믹이 끝나가는 지금 이 시절,

화려한 봄날은 다시 내게 오고 있다.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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