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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말 제대증 용 사진
상(償)
만국기가 휘날리는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날, 부모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달리기로 1등 상을
받는 것이 나의 소싯적 제일 큰 꿈이었다.
그러나 소싯적에 몸이 허약하여서 이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어떤 경우이든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고 또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자랑하기엔 쑥스럽지만 소싯적에 이루지 못한 꿈을 , 큰상을 20대에 두 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군대 생활이 한창 익숙해 가던 2년 차 어느 날 아침 근무하던 사무실에 살쾡이 별명으로 소문난
작전참모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야! 너, 김 해병"
"네"
"너 대학 다니다 왔지?"
"네"
책상 위에 책 두 권을 팽개치다시피 내던졌다.
두 권 중 하나를 읽고 내일 아침 과업 개시 전까지 원고지 20매 이상 독후감을 써 오라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계급이 한 단계 아래인 본인의 직속상관인 인사 참모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 받은 얼굴로 씩씩거리며 경위를 대충 설명하고는 휙 나가 버렸다.
작전참모의 설명 인즉은 전군 장병 독서 경진대회를 앞두고 사령부에서 예하 부대에서 각자
예선을 실시한 후 선발된 병사를 서울 사령부로 올려보네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단다.
휴가 전날 이 공문을 받은 담당 사병은 이 문서를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둔 체 휴가를 떠나버렸다.
사령부 결선을 불과 며칠 일 앞두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작전참모가 다급하다 보니 직접
지정 도서를 챙겨 들고 가능성이 있는 사병을 물색하러 나선 것이었다.
내 책상 위에 던져놓은 책의 제목을 슬쩍 곁 눈길로 보니 하나는 충무공의 '난중일기'였고 다른
한 권은 박 정희 대통령의 '민족중흥의 길 ' 이였다.
독후감을 쓰는 조건으로 하룻밤을 사무실에 머물 수 있도록 일단 점호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이라 눈치 빠르게 나는 박 정희 대통령 저서를 택했다.
읽어볼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 목차와 머리글 추천사만 건성으로 읽고서는 대충 앞뒤 문맥만
적당히 연결하여 분량을 채워 놓았다.
다음 날 사령부 내에서 실시된 예선에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본인 이름이 처음으로 호명되었다.
다음 날 새 군복 한 벌과 서울로 올라가서 사령부 본선에 출전하라는 출장 명령서가 동시에
내 손에 쥐어졌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은근슬쩍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본선에서는 이 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로 주제를 바꾸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책 제목을 바꾼 후에는 여러 번 정독을 하면서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여기서도 운 좋게 통과하게 되어 해병대 대표 두 명 중 한 명으로 전군 대회에 참가하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얼마 후 육군 대표 14명 기타 군 각 2명씩 총 20명이 겨루는 전군 대회가 국방부 지금의 삼각지에서
하루 종일 치러졌다.
당일 지정한 도서를 오전에 정독하고 오후에는 독후감을 쓴 후 직접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외부 심사관들에 의해 독후감 내용과 발표 태도를 종합하여 점수를 매기는 형식의 경연 대회였다.
아니면 말고라는 배짱으로 열 권의 예시 도서들 중 "난중일기"는 분명히 포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만 집중을 하였다.
예상한 대로 세 권의 예시된 과제 중에 난중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머릿속에 자세히 남아있지 않지만 전개한 내용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잡아나갔다.
임진, 정유재란 중 나라를 구한 명장 충무공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너무 매정하였던
이 순신 장군의 인간성을 기술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난중일기에는 명령에 불 복종하거나 군기를 어지럽히거나 부정을 저지른 부하들을 가차 없이
처형시켰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이를 주제로 충무공은 난국 중에 먼저 자신을 철저히 관리한 후에 군율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시켜
군율을 위반하거나 실수한 부하들에게 가차 없이 체형을 내렸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언급하였다.
지휘관으로써의 지휘 능력은 출중하였지만 부하를 사랑하거나 남을 포용하는 인간미가
부족하였다고 하였다.
이런 요소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미에 강조하여 달아 놓았다.
어느 교수가 심사평을 하면서 충무공에 대한 부정적인 접근과 반전이 돋보인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여 주었다.
은근히 기대를 하고 다음날 명동 예술 극장에서 있었던 시상식에 참석하였는데 대통령상 다음인
국무총리 상에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개인의 영광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 이후가 더 거창하였다.
자동차로 옮겨야 할 정도로 각개에서 답지한 도서와 선물 들 해병대 사령관과의 단독 면담 시 받은
촌지와 개인 선물, 신문사 인터뷰, 귀대 후 자대에서 전 장병 앞에 다시 실시된 거창한 시상식 등등
몇 개월 동안은 정말 영웅 대접을 받으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군 생활 중 사병이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모두 다 누려 보았다.
역시 상은, 무슨 상이던 주기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일인 것 같았다.
2017년 6월 6일 현충일 날
비 오는 날 조기를 계양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