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by 김 경덕


6.25 노래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며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또 싸워서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들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도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또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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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가는 길 차 속에서 오늘이 6.25 67주년이라는 뉴스를 듣자마자 어릴 때 불렸던

이 노래 가사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입속으로 가사를 더듬어 보니 아직도 일절과 후렴은 거의 정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오후 교회 특강 시간에 6.25 때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던 선배 장로님께서 스마트폰으로

이 노래를 다시 들려주었다.

18살에 학도병으로 차출을 당해 서울에서 경북 영천까지 걸어서 내려가 참전을 하였다고 하셨다.

참전 중 부상을 당하신 후 제대를 하시었고 오늘날까지 이사회의 어른으로서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시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이제 6.25를 경험한 세대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동족상쟁의 쓰라린 상처가 우리들, 특히 젊은이들,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 저 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미천하나마 개인적으로 겪은 6.25를 회상해 본다.

6.25 당시 피난 갔던 상황이 내 머릿속에는 가장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다.

47년 생이니까 4살 만 3살, 그해 여름 어느 날 밤 강 건너 공촌 마을, 지금은 부산시 금곡동, 에서 계속

총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밤에 국군 복장을 한 인민군이 내려와 마을의 민방위 대원(우리는 핫바지 군인이라 불렸다)들을

소집시켜 놓고 집단 사살을 한 후 도망을 가 버린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바로 강 건너 마을이라 언제 우리 마을에도 이런 변이 닥칠지 몰라서 다음날 우리 가족은 사촌들과

함께 소달구지를 타고 십여 킬로 떨어진 김해공항 근처 어느 장로님 댁으로 피난을 갔다.

여름이라 마루에 쳐 놓은 모기장 안에서 저희 누님과 사촌 누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우리를 먼저 피난시키고 집을 지키고 계셨던 아버지와 삼촌이 걱정이 되어서 우셨던 것이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쟁 지역이 북쪽으로 올라간 그 해 겨울이었다.

마을 이장이시며 집의 규모가 비교적 큰 우리 집에 어느 날 밤 이웃 어르신 한 분이 낯선 사람을 한 명을

우리 집에 다리고 왔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집에 사셨던 분인데 자기 집에 재워 달라고 찾아왔었지만 자기 집에는 빈방이

없어 우리 집에 다리고 왔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사랑채에 있는 빈방으로 이 낯선 손님을 안내해 주고서는 안방으로 올라오셨다.

궁금해하는 우리를 보고서는 긴장된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들을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 안 마당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손들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이불속에 머리를 박고 숨어있던 내가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 정도로 가까이서 이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상황이 바로 종료가 되었다.

이 낯선 손님은 낙동강 전선에서 낙오한 인민군 패잔병이었다.

늦은 오후 강을 건너게 해 준 뱃사공이 신고를 하였고 출동한 경찰들이 근처 마을을 탐문해 오다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솜바지 속에는 분해한 따발총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였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이 일로 인하여 아버지는 여러 번 파출소에 불러

가야만 했다.

비록 먼발치에서 봤지만 팔을 뒤로 묶인 체 끌려가는 어리고 왜소한 당시의 이 인민군,

겁나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그 인민군은 지금 어느 하늘 밑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 하늘나라에 살고 있을까?

전쟁이 없었다면 똑같은 내 나라 내 백성 내 자식 내 아들이었을

턴데,,,,,,,,,,,,,


2017, 6.25 ( 67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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