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Victoria 섬에서(수채화자자화상)
세상에 이런 일이
어느 T.V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제목이다.
가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라며 가볍게
생각하면서 그냥 보면서 즐기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나에게서 일어났었다.
아내는 방송에 출연해도 될 일이라며 자꾸만 놀려된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본태성 고혈압 증상을 가지고 있다.
50대를 넘기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매일 아침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
2000년 6월 미국 여행 후 귀국을 하려고 L.A 공항에 나갔는데 귀국 편 항공기에 차질이 생겼다.
귀국 편 항공기가 일본항공(JAL) 이였는데 항공기 기체 이상으로 정비 중이라는 안내 방송이
탑승 전에 계속 흘러나왔다.
결국 4시간 정도 늦게 이륙하여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저녁 9시가 지나서야 겨우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로 향하는 마지막 연결 편 항공기는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항공사가 편의를 제공하여 공항 내에 있는 닛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서울로 향하는 새로운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공항 라운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호텔은 하룻밤 쉬어가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깔끔하고 모든 것이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장거리 비행에 지친 몸을 충분히 회복시키고서는 아침 6시에 문을 연다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갔기 때문에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있었다.
전망이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일본식 아침 뷔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있은데 갑자기
단체 관광을 온듯한 일본 할아버지 할머니들 한 무리가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한 후라 이분들이 앉을자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시골에서 새로 생긴 간사이 공항을 관광하려 와서는 이 호텔에 하룻밤을 묵은 것 같았다.
어느 노부부가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 들고서는 내 자리를 겨냥하고
서는 저만치 비켜서서 조용히 기다리고 서 있었다.
빨리 끝내고 일어서야겠다는 마음에 커피도 생략하고 서둘러 일어섰다.
몇 발짝 내딛다가 아침마다 복용하는 혈압약이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와
주머니에 넣어온 혈압약을 급하게 입에 틀어넣고서는 물을 마셨다.
"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뭔가 이상했다.
순간적으로 뭐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보통날은 혈압약을 딱딱한 자체 포장 용기에서 미리 분리해 두었다가 아침마다 먹었는데
여정이 끝난 이날 용 약은 아직 포장지에 그대로 싸여있었던 것이었다.
사방 1cm 정도 크기의 딱딱한 포장용지 채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다가
식도 중간쯤에 걸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목구멍이 금방 따끔따끔해 왔다.
몇 번을 컥컥거리다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급히 올라갔다.
옛날 어른들이 하는 방식대로 비상용 실타래에서 실을 얼마쯤 풀어
물과 함께 삼켰다.
몇 번을 헛 구역질을 했더니 목에 걸린 약은 나오질 않고 금방 오른쪽
눈에 핏발이 보기 흉하게 벌겋게 서 버렸다.
비행시간이 다가와 목 속에서 전해오는 통증을 그대로 안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내에서 주는 기내식은 물 외는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김포 공항에 내리자마자 압구정동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 달려가 X-ray 촬영부터
먼저 하였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건만 사진을 판독한 의사는 아무 이 물질도 식도 안에서는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왜 통증이 계속돼야 고 물렀더니 의사 왈
"아마 날카로운 것이 식도를 따라 내려갈 때 생긴 상처 때문일 것입니다"
소화기관을 타고 나오려면 하루 이틀 정도는 걸릴 터니 기다려 보란다.
무식하게 일주일을 더 참고 기다렸건만 물 외는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고 통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어느 날 아침 통증이 갑자기 심해져서 집 근처의 내과를 찾아갔다.
X-ray에 안 잡힐 수도 있으니 내시경으로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였다.
"어머나"
내시경을 보조하던 간호사 언니의 비명부터 먼저 들려왔다.
모니터를 내 앞으로 돌려주며 한번 보란다.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도 놀라서 들어왔다.
목구멍을 넘어서 얼마 들어가지 않아 식도 중간에 비스듬히 껍질째 걸려있는 혈압약,
"며칠간 이러고 있었다고요?"
"일주일"
"아니 멀쩡하신 어르신이,,,,,,,,"
남은 아파 죽겠는데 하도 어이가 없었던지 간호사는 키드 키득 웃기까지 했다.
이미 주변 근육이 굳어졌기 때문에 큰 병원으로 가서 대형 내시경으로 절단 후
끄집어내던지 아니면 목을 절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인근 종합병원에 바로 가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응급처방서와 함께 바로
환자를 보낸다고 전화까지 걸어 주셨다.
졸지에 응급환자가 되어 버렸다.
"사장님, 평소에도 둔한 편이세요?" 궁금해하던 간호사의 질문
"시끄럽다, 마,, 너보다 더 예민하다"
마음속으로만 대답하고 서둘러 큰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종합병원에 도착하니 사전 연락을 받은 전문 내시경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취 없이 바로 내시경을 넣을 터니 힘들더라도 참으라고 하였다.
입으로 들이미는 내시경 굵기가 웬만한 어린이들 팔뚝만 했다.
남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내시경이 들어가자마자 의사 양반들의
탄성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한마디로 이렇게 크고 딱딱한 약을 껍질째 그것도 멀쩡하게 생긴 어른이
삼켰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시경 가위로 자르는 소리, 참을 수 없는 통증, 연속되는 헛 구역질,
빨아내는 내시경 소리가 반복되더니
"나왔다" 하는 집도의사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큰 내시경이 나왔는데 다시 작은 내시경이 또 들어갔다.
확인 및 약물 주입 내시경용 내시경이란다.
정말 끔찍하고 긴 하루였다.
한 번도 힘들다는 내시경이 하루에 네 번이나 내 목구멍을 들락거렸다.
나는 무식하고 감각도 둔하고 여기에 더해 미련한 무지렁이 취급을 당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바로 나한테 일어났었다.
2017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