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by 김 경덕

알 수 없어요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지루한 여름 오후다. 소나기가 한바탕 분탕질을 하고 지나간 후 하늘이 미안했던지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짓고 있다.

서쪽 하늘에서부터 세수를 하듯 먹구름을 빠르게 씻어내고 있다.

평생을 두고 보아 온 푸른 하늘이지만 장마 끝이라 그런지 새삼스럽다.

눅눅한 장마철 내내 맡아 왔던 익숙한 체취보다는 한결 깔끔한 기운이 하늘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 같다. 얼마 동안 지루한 날의 연속이었다.


장마가 지루하니 하루도 지루하다

꺾일 줄 모르는 코로나19는 더욱 지루하다. 여기에다 답답한 작금의 정치판은 남의 탓만 하면서 우리를 더욱 지루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멍 때리며 먹구름이 흩어지는 서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난날 한 선구자가 남긴 시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구절을 되새기며 놓아버린 오후 한 나절을 다시 손에 쥐어본다.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 용운 선사는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밀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선뜻선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중략-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노을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만해는 시를 심미적 가치나 유행 사상에서 운행하지 않고 좀 더 넓게 펼쳐서 문학을 철학이나 종교적 탐구와 병행시킨 의식으로 보았다"

- 시평 중에서-


시인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장마로 보고 해방의 그날을 푸른 하늘 속에 떠오를 태양으로 생각하였다고 학창 시절에 배웠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서 가슴이 다시 떨려온다. 이렇게 여름 장마 하나를 두고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오늘을 철학이나 종교적 탐구 관점으로 한번 되돌아 가 생각해보니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지나온 날들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소속되었거나 소속된 집단을 위해, 이웃과 친구를 위해, 형제나 가족을 위해,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과연 무엇을 언제 어떻게 불태우며 살아왔던가?


타고 남은 한 줌의 재가 과연 나에 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직도 가슴에 불씨는 남아있는데 무엇으로 등불을 다시 밝힐 수가 있단 말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재라도 주워 모아 기름을 짜야 하나?

아니면 거친 손으로 서편 하늘에 떨어지는 해를 단장시켜주는 저녁노을과 같은 역할이라도 해야 하나?


오늘도 하늘이 내려 주는 새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하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는데, 하루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2022, 7, 25일

오늘은 75차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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