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라에서 세 시간 반을 달려 ZARA 상표의 본 고장 Zaragoza에 도착했다. 이곳은 중세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스페인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지난날 예수의 12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산티아고)가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곳 사람들이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가져온 지팡이를 군중들 앞에서 들어 보였다. 그러자이 지팡이 위에 성모 마리아상이 나타났다.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 오늘날 '사라고자' 성모 대성당'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보아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을 만큼 어마한 규모의 대 성당이다. 규모가 크면 감동도 크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성당 내부의 상당 부분이 당시 군주나 성직자의 개인용 예배실과 무덤으로 채워져 있었다.
성스러워야 할 성당 내부가 갑자기 욕망의 산실로 바라 보였다.
이 땅 이베리아 반도는 8세기부터 13세기 초까지 지중해를 건너온 아랍의 무어족이 약 500년 이상을 지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당은 과거 이슬람인들의 건축양식과 가톨릭 건축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17,18세기에 세워진 바로크 건축 양식의 극치이다.
이 성당 역시 멀리서 보면 사방에 높은 탑으로 장식되어 있어 모스크 사원 같다.
왜, 지난날의 지배자나 주교들이 이렇게 막대한 재원과 무수한 인력을 동원하여 오랜 기간 동안 거대한 성당을 건축하였을까?
자기 백성들의 신앙심을 심화시키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더 많은 선교를 하기 위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영적 감화로 신에게 바치는 감사의 표시였을까?
모두 이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강자나 지배자들 심지어 영적 지도자까지 합세한 그들만의 허영과 욕망의 결과물이다. 이것들이 땅 위에 솟아올라 그 위용을 오늘날까지 자랑하고 있다. 생각이 너무 지나쳤나?
이것보다는 사라 고자에 있다는 스페인 최고 명품 타파스를 먹어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 못내 아쉽다.
팜플로나(Pamplona)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중간에 자리한 도시다. 프랑스를 출발한 순례객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스페인의 도시다.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는 다시 750km다.
순례길이 총 40일 소요된다고 하니 여기서부터 다시 30일 더 가야 한다. 금년에도 세계 각국에서 지금까지 13만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이중 3,000명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우리는 대단한 열정을 가진 민족임이 틀림없다.
또한 이곳은 그 유명한 골목 투우의 고장이기도 하다. 7월에 열리는 이 축제 때 수입으로 이 도시가 일 년을 살아간다는 과장된 소리도 있다. 성난 투우가 달린 800m 좁은 골목길을 장대비를 성난 소처럼 피하면서 반대로 한번 달려보았다.
팜플로나의 100년 이상된 고풍스러운 유명 맛집에서 먹고 마신 전통 스페인 요리와 와인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헤밍웨이를 카페에서 직접 만나 보았다.헤밍웨이는 이 도시를 사랑하였다. 매일 오후에는 이 카페에 나와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실물 조각상을 바로 그 자리에 세워 놓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가 여기서 구상하고
쓰여졌나 보나.
나는 아직도 내 종도 울리지 못하고 있는데....
부루고스(Burgos)
이번 여행의 마지막 스페인 숙박지이다.
이곳 역시 고대도시로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진 Castilla 왕국의 수도였다.
또한 아랍의 무어족이 8세기에 지중해를 건너 반도 남쪽으로 들어와 13세기까지 장기간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을 때 반도 회복 운동을 일으킨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카스틸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인근 아르곤 왕국 페르난도 2세가 그때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다. 이후 두 왕국이 힘을 합쳐 마지막까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 버티고 있던 아랍계 무어족을 완전히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었다.
갑자기 알람브라 궁전에 가서 이 궁전을 주제로 작곡된 기타 연주곡을 크라식 기타로 한번 들어보고 싶어 진다.
부루고스 대성당의 규모와 내부 장식의 화려함은 극치 중 극치이다.
늦은 오후 2시간여 돌아보았는데보는 곳마다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미인을 너무 많이 보면 쉽게 싫증이 난다고 했다. 감탄사를 속에 삼키고 눈 구경만으로 돌아보는데 당시 대주교가 타고 나가 이곳 민초들에게 성찬을 베풀었다는 은마차가 구석에 진열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