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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간다

by 김 경덕


여름이 간다.


대관령 자연 휴양림에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여기는 고도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9월이 코 앞에 다가왔기

때문일까?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냉기가 코끝에 싸하게 느껴진다.

예약된 숙소동 바로 앞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계곡이 있다.

여기에 약 10m 높이의 2단 폭포가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쏟아진다.

물소리가 멍 때리니 세상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마음에 묵은 때를, 온갖

근심사를 말끔히 씻겨 주는 것 같다.

잠결에 이 폭포물소리가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들려 베란다로 나가

보기까지 했다.


계곡의 사계


한 방울의 물이

빙점을 찍으니

소리가 되고 노래가 된다

실비 따라 꽃도 피고

산새는 짝을 찾아 둥지를 튼다


여름

몸을 키운 물은

소리마저 키운다

합창이 굉음으로 변할 땐

얼굴 색깔마저 바뀐다

주위에 모든 것을 삼킬 듯이


가을

물소리가 자자드니

얼굴은 맑아지고

단풍이 허공을 타고 내려와

갖은 색깔로 수를 놓는다

가을비가 갈 길을 재촉한다


겨울

가는 길도 멈추고

소리도 노래도 끝났다

계곡 따라 샛바람 올라온다

쌓인 눈에 어깨가 무거워지니

또 기다림은 천년이다


2023, 8윌의 마지막

대관령 자연 휴양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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