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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Aug 29. 2023

구월이 오면

https://youtube.com/watch?v=a-EGoD0PVRk&si=3L8JJgrP031ZYyvL

구월이 오면

구 월이 문 앞에 다가와 서 있다.
나가서 반갑게 맞이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문을

열어주기가 싫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게 되면 세월의 속도가

항상 노인들을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액셀레이트를 밟지 않았는데도 속도가 자꾸 올라간다. 10년 주기로 10km씩 빨라진단다. 지금은 시속 70km이지만  이제 80km도 멀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바라다 보이는 창조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자연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계절 따라 변화하는

모습은 너무나 신기하다.

하나님은 말씀 이전에 이 자연을 우리에게 먼저 주셨다.
인간들이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잘 가꾸며

살아가라고..


 "The Lord gave nature before the Word, but man lived in this nature and did not realize the will of the Lord. It's truth."

우리는 이 자연을 가꾸어야 하는 정원사의 역할은

잊어버리고 지배자, 파괴자의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본 앞바다에서, 심지어 우리 집

주방에서 까지...

여기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 시인의

노래가 있다.
오래된 일기장을 정리하다 바로 오늘 메모해 놓은

이 시를 우연히 찾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땐 건성으로 옮겨놓았다가 바로 잊어버렸는데

이제 다시 읽어보니 새삼스럽게  가슴에 들어와 안긴다.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울어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의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어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비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안도현(1961 경북예천생)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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