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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Sep 13. 2023

다시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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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백두산(장빠이산)


다시 일탈이다.

이번에는 백두산, 이 계절에만 천지를 제대로 관망할

수 있다기에 뒤늦게 한 산악회의 장빠이산 일정에 동행하기로 했다.


아침 비행기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셨다.

연길을 경유하여 백두산 풍경구 초입인 이곳 이도백하까지 단숨에 들어왔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니 아직도 저녁까지는 한참의 여유가 있다.


36년 전 중국과 정식 수교를 하기 전 이곳 이도백하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당시에 동북 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은 한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별도의 방문 허가가 필요했다.  

86 서울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던 중국 대표단의 대표 안내를,  다녔던 회사에서 잠시 담당을 한 적이 있다.

중국 대표가 보답으로 안내를 맡았던 우리 측에 백두산을 방문할 수 있는 특별 초청장을 보내주었다.

지금은 서로 간의 문호가 개방되어 무시로 오고 갈 수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초청장이었다.

관련 기관에서 사전 보안교육을 받고 홍콩으로 내려가 홍콩에 있는 신화사 통신 지사에서 중국비자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북경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가 있었다.

초청기관에서 파견시켜 준 중국정부의 고급 관부와 김일성 대학에서 2년간 강의를 했다는 중국인 통역의 안내를 받으면서  북경에서 장춘까지는 쌍발 여객기, 장춘에서 연길까지는  야간열차로 밤새도록 달려왔다.

연길에서 다시 털털이 고물 버스를 바쿼타고 5시간을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달려온 곳이 바로 이곳 이도백화다. 그때는 정말 험난하고 지루한 여정이었다.

오늘은 인천공항에서 연길공항까지 직항 비행기로 2시간, 연길공항에 내려 바로 최신형 리무진 버스를 갈아타고 새로 난 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 만에 이곳에 들어왔다.

참으로 세월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중국이 빠르게 발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북파지

87년 당시 여기에 올라온 날은 4월 초파일이었다. 지금의 북파코스다.

당시 소천지 인근에는 중국의 동계 올림픽 선수들의  훈련장과 숙소만 있었다.

진입도로도 대부분 비포장이었고  관련 편의 시설은 전무하였다. 지금의 노천 온천물이 나오는 곳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장백폭포 아래 가파르게 생긴 너널 지대를 Zig Zag로 오르면 장백폭포 위로 지나가는  측면 절벽길이 나온다. 위아래 각 100m 정도의 절벽 뜸을 따라 만들어진 아주 위험한 등산로였다. 이날은 전날밤 내린 폭설로 인해 절벽 사이의 이 길이 약 10m 정도가 유실되어 버렸다. 이날 등산 후 달궁지인 천지 물가에서 야영을 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다행히 히말리아 등정 경험이 있는 두 대원이 미리 준비해 간 로프를 설치하고 안전을 확보한 후에야 어렵게 이 길을 통과하였다.

천지 물가에 당도하였으나 전날 밤 내린 눈과 심한 강풍 때문에 도저히 야영이 불가능해 보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일행의 안전을 우선 고려하여 하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쉬운 하산 결정이었다.

함께 동행했던 중국 측 관리도 매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길을 계단으로 잘 정비해 놓았다. 길 위에 안전을 위해 큰 크리트로 지붕까지 덮어 놓았다.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시켜 놓고 일대를 보존하고 있지만 이 인공 구조물은 멀리서 봐도 눈에 가시처럼 보였다.


오늘 지난날 아쉬움을 안고 돌아섰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지난날과는 다르게 장백폭포 초입은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도로는 물론 각종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다. 이곳 입장은 당국이 제공하는 전용버스로만 가능하고 입장료는 무려 8만이나 한다

아쉽게도 이제는 폭포 전방대까지만 올라갈 수 있고

더 이상 천지물가로는 등반을 할 수가 없다.

멀리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보라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제는 여기도 중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유명관광지가  되었다.  탐방객이 너무 아 밀리다시피 올라갔지만 날씨 하나만은 정말 끝장이었다.



서파지

이도백하에서 2시간 달려와 전용버스로 다시 30분을 더 들어야 천지 관람 등정을 시작할 수 있다.

등정 시작 시점에서 1440 계단을 올라가야 천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조금 난이도가 있지만 전망대가 천지 수면보다 약 150m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천지 전체를 관망하기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년 중 최고의 날씨 덕문에 건너편 북한땅과 백두산 주봉인 관모봉이  바로 눈앞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렸더니 종아리가 단단하게 뭉쳐져 버렸다.

지난날에 이곳에 왔을 때는 바람과 안개가 너무 심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등산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철수를 감행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한을 모두 풀어주기라도 하 듯 날씨가 너무 맑고 하늘은 푸르다.  천지보다는 돌아서서 보이는 만주벌이 자꾸 눈에 밟힌다. 발아래 저 대지는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말을 따고 달렸던 우리 땅이었다.

지금 이 천지의 절반도 중국령이다.

우리는 남의 땅이 되어버린 옛 우리 땅에 서서 

건너갈 수 없는 우리 땅을 바라보고 있다.

역사의 아이로니가 회한으로 밀려온다.

이제는 이런 어리석은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저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청산리, 봉오동 전투에서 적을 초토화시킨 영웅들을 역사에서 지우기에 급급한 오늘날의 우리 지도자들 아니 우리가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2023.9, 4

             다시 백두산 천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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