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 경덕

김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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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고향은 충남 광천이다.

아내의 고향 특산물은 토굴에서 숙성한 새우젓과 광천 김이다.

지금도 철 따라 광천 김을 택배로 주문해놓고선 자주 식탁에 올리며 은근히

고향 자랑을 한다.

내 고향은 경남 김해다.

"옛 날에는 김해에도 김이 났는데,,,,"라고 말 끝을 흐리면,

"아니 김해에서도 김이 난다고?"

"당신, 거짓말하지 마!" 금방 핀잔을 준다.

아내의 고향에만 맛있는 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고향 김해에도 김이 있었다.

지금은 공업단지로 사라져 버렸지만 향과 맛이 독특한 파래 섞인 김을 옛 날에는

제법 많이 생산하였다. 바다에 연한 명지, 녹산면이 이 김의 주 생산지였다.

겨울철이 되면 이 파래 김은 김치와 시래깃국뿐인 밥상에 가끔 귀한 손님으로

찾아와 우리들의 사랑을 받곤 했다.


아내는 오래전에 내가 얘기해준 학창 시절 추억담을 되뇌며

"갱덕아! "

"맘 놓고 김 많이 묵어라"라며 나를 놀려댄다.

지난주 3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두 살 위 사촌 형이 다녀갔다.

사촌 형과는 어린 시절 한마을에서 태어나 내내 같이 자랐다.

부산에 나와서 공부를 같이했던 우리들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형과 동갑인

한마을 또 다른 형과 같이 셋이서 자취를 하였다.

먹거리가 귀하던 5.16 직후인 60년대 초반으로 기억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남의 집 문간방에 셋이 누우면 책상 놓을 공간마저도 없었다.

부식비로 서로 얼마씩을 각출해 놓고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부식을 조달해서

먹었다.

어느 날 별식으로 이 유명한 파래 김을 연탄 불에 살짝 구워서 우리들의 밥상에

올려놓았다.

보통 한 장으로 6조각 또는 여덟 조각을 내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서는

밥을 한 술 얹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먹는 방식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김이라 조금 넉넉하게 잘라 밥을 올려놓고 막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정* 형 왈

"갱덕아! 비싼 김을 고렇게 먹으면 안 된다."

"그러몬, 어떻게 먹는 긴데?"

"처음에는 이렇게 김 위에 있는 밥만 먹고, 두 번째는 김하고 같이 먹는 기다"

"???? 말도 안 된다."

우리들은 절약의 고수인 정*형의 기막힌 제안에 따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 귀하고도 비싼 김을 한 끼 먹을 양으로 두 끼를 나누어 먹었다.



절약의 왕, 정* 형은 고향에서 고위 공직자직을 수행한 후 은퇴하였다.

오랜만에 한국에 다니려 온 사촌 형이 이번 고향길에 정수 형을 만나고 올라왔다.

저녁 내내 지나간 옛날이야기로 회포를 풀던 중, 형은 내가 모르고 있었던

또 다른 옛날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시장에서 꽁치 몇 마리를 사 가지고 와서 김치를 넣고 꽁치 찌개를

끓였단다. 둘이서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또 다른 기발한 제안이

정*형으로부터 날아왔단다.

"경* 아! 우리 오늘 저녁 꽁치찌개는 국물만 먹자"

"왜"

"꽁치를 내일 아침에 먹으면 두 끼를 먹을 수 있다 아이가?

이것 역시 기상천외하기도 기가 막힐 절약 아이디어였다.

사촌 형은 마지못해 친구의 이 제안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단다.


우리 셋이서 이번 12월 초 고향에서 만나서 골프도 치고 김이랑, 꽁치랑 마음 놓고

먹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당일 아침 중부 지방에 내린 폭설로 나는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하고 말았다.

정* 형이 스폰서 하기로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그날 저녁 못 내려가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였더니

"덕이 네가 못 내려와서 마, 대단히 섭섭하다"

"친구 경*한 테는 오늘 저녁 먹고 싶은 것 다 사 줄 끼다."

"형, 말만 들어도 고맙네요, 먹은 것보다 더 배가 부른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절로 웃음도 나고 또 아내의 놀림감도 되겠지만 그 옛 날 학창 시절의

슬프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한 지워지지 않는 우리들만의 추억담이다.


201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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