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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한 장

by 김 경덕

백지 한 장

1

오늘은 아내의 73번째 생일.

다음 달이면 결혼 50년 차

살아오는 동안 오늘 같은

혹한도 있었고 혹서도 있었다


어리석은 자는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면 후회뿐이다

71년 봄 캠퍼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그날 남긴 것은 무감각

백지 한 장뿐이었는데

그때 남긴 백지 한 장 마주 들고

우리는 눈 덮인 대관령을 넘었다


2

동해의 거친 겨울 파도와

살아 숨 쉬는 활어도 보고 싶다.

지금은 겨울, 곰치철인데,

박달 대게는? 홍게는?

이 철에도 오징어가 잡히나?

아냐, 겨울철 별미는 양미리야

도루묵은? 청어는?

생태는 언제부터인가 씨가 말랐다

겨울철 대구는? 밀복은? 참복은?

이 녀석들처럼 우리 부부는

바닷속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3

수족관 생선이 날갯짓을 하며

허공을 날다가 추락했다

몸부림치다 튕긴 물 한 방울들만

백지 위에 떨어져 자국을 남겼다

얼룩도 해가지니 따라서 사라진다

여보, 우리 저 배 타고 밤바다로

한번 나가 볼까?

무슨 소리야!

난 바다가, 바람도, 추위도

다 무서워, 당신만 빼고..

우리가 늙은 줄

당신은 아직도 못 느끼 기고 있나 봐?


2025,2,5

정동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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