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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네

by 김 경덕

눈이 내리네


강아지는

눈이 내리면 꼬리를 흔들며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간다.

늙은 삽살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엔 지하철만 탈 줄 알았는데

이제는 새마을호도 타고

ITX, KTX도 탈 줄 안다.


새벽부터 습설이 마구 쏟아진다.

안방마님의 호통이 두려워

꼬리를 바짝 내리고

우리를 몰래 빠져나왔다.

수원을 기점으로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서북부를 한 바퀴 돌아오는

한 나절 Short track 열차 코스를 택했다.


평택벌에는 벌써 흰 눈이 많이 쌓였다

키 자랑하는 녀석들(전봇대)이 너무 많다.

목이 곧은 머리 위에 모자를 섰다.

흰 눈으로 모두 덮어버렸으면 좋겠다


신례원 벌에는 사락 눈이 내린다.

먼저 터 잡은 비닐하우스가 등을 돌리고

여기는 자기 땅이라 텃세를 하고 있다.

동색인 흰 눈을 자꾸만 밀어 떨쳐 버린다.


순국 지사의 충정이 아직도 남아있나?

삽교, 덕산벌에는 짙은 눈구름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쏟아진다.

열사의 열정이 뜨거웠나, 두려웠나?

눈들은 모두 가야산로 물러나 앉았다.



당진의 합덕, 고덕벌은 의외로 넓다.

이름 끝에 덕자가 있어 그런가?

마치 고향벌처럼 시야가 멀리 간다.

벌판 위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

봄이 벌써 저만큼 와 있는 것 같다.


홍주(홍성) 역에 내리니

눈보라가 미친 듯이 춤을 춘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김좌진 동상 뒤로 잠깐 몸을 피했다.

이곳은 아내의 고향(광천) 땅인데

나를 환영하는 춤일까? 아니면

홀대하는 발악일까?

지난날 아내의 고향 광천을 지날 때는

빠뜨리지 않고 삼배를 올렸는데

그동안 올린 치성이 아직 까지도 부족한가?


2025, 1, 27

수원-천안-아산-예산-홍성

은 장항선으로

홍성-합덕-안중-서화성-수원은

신설된 서해선을 타고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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