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섬으로 갈까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목표에 대한 결정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노화 현상에서 나타나는 뇌의 인지능력 저하로 생기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고 대상을 생각하는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더라도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목표하였던 대상에 대한 기대치이다. 이것 만큼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체념 외에는 낮추기가 힘들다. 누구나 자신이 지난날에 체험한 경험이나 누렸던 직위나 권세, 심지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축척 과정까지도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심중에 지니고 있다.
노년에 거는 새로운 기대치는 자신이 지난날 체험한 것보다 항상 높게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노욕'이다.
노욕 중에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도 있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기대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높아 좀처럼 떨어지지 앉는다.
억제할 필요가 없다. 잘 키워서 노년에 부족한 기대치를 충족시킨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노년의 삶이 될 것 같다.
젊은 시절, 40대 초반 때였다.
전국에 산재한 산들 중에 높이가 1,000m 이상인 산들을 전부 등반해 보기로 작정을 하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토요일도 정상 근무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틈만 나면 산으로 달려갔다. 어느 해인가 한 해의 산행 기록을 짚어보았더니 45회나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녔다. 당시 목표로 했던 고도가 1,000m 이상 되는 산은 전국에 모두 25개 있었다. 아직까지 오르지 못한 산은 경북의 팔공산, 합천의 황매산, 전북 진안의 운장산과 영월에 있는 백운산뿐이다. 이만 하면 스스로에게도 족하다.
나이가 들어가니 육지에 있는 산들은 500 고지만 넘어도 당일 산행으로는 힘이 부친다. 오르고 싶은 기대치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어느 때부터 높이가 적당한 섬 산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보니 섬 산행을 섬 기행으로 슬쩍 바꾸어 놓고 이 섬 저 섬으로 건너 다닌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섬 기행 1-
북으로부터 강화도. 석모도, 무의도,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제부도, 자월도, 대 이작도, 승봉도, 덕적도, 굴업도, 풍도, 대 난지도 경기도는 여기 까지다. 접경지역에 있는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는 아직도 접근이 용이치 않아서 훗날로 미루어 놓았다.
이 섬 중에서 무의도에 있는 호룡곡산(244m)은 수 차례 올라갔다. 이제는 배를 타지 않아도 인천 공항 인근에서 차로 바로 접근이 가능하다. 산행의 백미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올라가야 느낄 수 있다. 정상에 오른 후 하나개 해수욕장 방향으로 내려오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차오르는 밀물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 물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 가슴에 물이 담기지 않으면 물 때를 맞추어 다시 가면 된다. 어느 봄날 세 번째로 올라갔을 때 비로소 가슴에 물을 담아
올 수가 있었다.
충청도에 속해있는 섬들 중에는 안면도, 신진도, 대, 소난지도, 가이도, 원산도, 호도, 삽시도를 비롯하여 서해안 깊숙한 곳에 있는 외연도까지 이미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왜 그런지 충청도의 섬들은 밋밋하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 충청도 스타일 그대로다.
기억에 남을 만한 그림들이 기억 속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전라도는 전국에서 섬이 제일 많은 지방이다.
하도 많은 섬들을 돌아다녀서 여기에 모두 다 올리기가 민망스럽다. 그중에서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 몇 있다. 첫째는 신안군에 속한 다도해 섬들이다. 천사대교를 건너가면 아기자기한 여러 섬들을 마치 한 섬처럼 다리로 연결시켜 놓았다. 이 섬들 중 백미는 비금도다. 이 섬에는 높이가 비슷한 선왕산(255m)과 그림산(254m)이 있다. 작은 섬이라 2시간이면 종주가 가능하다. 꼭 산행을 해야만 이 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해풍에 시달려 얼굴을 드러낸 바위산과 그 아래 편안히 누운 염전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곳이다. 다시 들어가 낙조 때 한번 더 올라가 보고 싶은 곳이다.
다음은 진도에 속한 상조도를 빠뜨릴 수 없다. 이곳 돈대산(218m)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사방으로 바라보이는 탁 터인 바다전망은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바다 조망경치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조도 등대도 빠뜨릴 수 없다. 특히 조류가 급할게 흐를 때 내는 바다의 울음소리가 마치 등대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착각을 일으킨다.
이곳에 벌써 4번이나 다녀왔다. 이 섬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아침 일출과 저녁 일몰 때 꼭 한번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곳 전망대 아래 남쪽 바다가 바로 맹골군도다. 2014년 세월호가 바로 여기서 침몰되었다. 300여 명의 어린 영혼이 수장된 곳이다. 먼저 간 어린 영혼들을 위해 반드시 묵념을 한 후에 내려오시기를....
하나 더 추가하면 역시 진도군에 속해 있는 관매도다. 입도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이곳에 있는 십리 백사장과 방풍 소나무 숲은 어느 지역 명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루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미풍이 불어오는 봄날에 들어가서 인심 좋은 민박집을 정해놓고 한 달 동안 멍 때리다 오고 싶은 섬이기도 하다.
2025, 1, 25
섬기행 2부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