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사진

by 김 경덕


묵은 사진

70대부터는 신변에 지니고 있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며 살아야 할 시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90년대 초 미국 출장길에 파트너 회사의 부 사장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다.

켄터키 주 Louisville 근교 골프장 안에 자리한 규모가 큰 고급 저택이었다.

70대 초반의 노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넓고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단 한 번, 부활절 휴가, 온다는 두 외손녀를 위해 이층에다 핑크 룸과

블루룸 두 개를 예쁘게 꾸며 놓았다.

그런데 각 방에는 특이하게도 커다란 액자가 각각 하나씩 걸려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화된 사진들을 기념으로 보관해두던 시대였다.

오래된 사진 속의 두 부부 얼굴만 오려내어서 커다란 액자 속을 가득 채워 놓았다.

조금은 괴이한 생각이 들어 이 액자를 만든 이유를 물어보았다.

얼마 전 이웃에서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 부부가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마지막 장례를 치른 후 삼일차 되던 날에 친구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 집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자녀들이 페치카 앞에 둘러앉아서 웃으면서 부모님의 유품인 사진들을

태우고 있었단다. 그 속에는 자기들 부부가 들어있는 사진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고 했다.

위로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상처만 받고 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들도 세상을 떠나면 자기 자식들이

똑같이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전 모습을 자녀들이 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사진 속에 있는 자신들의 얼굴만

오려내어서 이렇게 액자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사진 속에 있던 배경도 사라지고 이야기도 모두 지워져 버리고 없었다.

다양한 형태의 얼굴 표정들만 파도에 색이 바랜 흰 조개껍질처럼 텅 빈

손녀들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록 사진이지만 마치 영혼이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 년에 한 번 다녀간다는 손녀들이 그래도 자신들의 이 모습들을 보고

오래오래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어째 설명을 하는 이 부부나 듣는 나 역시 찜찜하게 느껴진 기분을

금방 지울 수가 없었다.


며칠째 짬이 나길래 서랍 속과 창고를 뒤져 해묵은 사진들을 끄집어내어

놓았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중요한 사진들은 Smart Phone으로 옮기고 자녀들 사진은 각자 본인들이 챙겨

가라고 따로 구분하여 놓았다.

스스로 한 번 더 들어다 보고 폐기해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장씩 잠깐 바라본 후 버릴 때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지난날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버리는 손끝에 느껴지는 애잔한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래도 불속으로 남의 손에 의해 들어가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정리

하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였다.


2019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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