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UN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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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cun

옷장 속에 딱 한 번만 입고 걸어 둔 예복(턱시도)이 한 벌 있다.

오래전 직원 결혼식 때 한 번 나들이를 한 후 딱하게도 여태까지 벽장 속에 갇혀만 있다.

90년 봄 도입 스포츠 의류 상표권자인 미국의 한 회사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왔다.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Licensee 들을 초청하여 시카고에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 후

장소를 Mexico 휴양지 Cancun으로 옮겨 Seminar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초청장에는 초청 조건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피 초청자는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로 부부동반으로 참석해야 하며 행사 참석 시 필요한

복장은 턱시도 정장도 있고 골프, 테니스 용 스포츠 의류도 있었다.

세미나는 매일 오전 각국 대표가 주어진 주제에 따라 15분 정도 직접 Speech를 하고 5분

질의응답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발표 내용을 영어로 작성하여 참가하기 전에

미리 보내 달라고 하였다.

당시 사장과 본부장은 이런저런 핑계로 극구 사양을 하였고 결국 담당 부장이던 나에게까지

순서가 밀려 내려왔다.

턱시도 구입 비용은 미안해서였던지 회사 경비로 처리하라고 하여서 명동에 나가서 기성복을

한 벌을 구입하였다.

전문가의 조언으로 입는 방법과 턱시도 용 Shirt 까지는 준비하였는데 훗날 사진을 보니 본인

턱시도의 상의 주머니에만 장식용 Handkerchief 가 비어 있었다.


시카고 박물관의 대형 십자형 메인 로비에서 거행된 행사는 장관이었다.

주지사, 시장, 세계 유명 디자이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 중간중간 소개되었다.

동 부인을 하지 않고 참석한 일본 대표와 동성 짝이 되어 남미에서 온 피 초청자 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으로 입어본 턱시도라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무척

초라해 보이는 것 같았다.

간단한 식순이 끝나고 연이어 벌어진 식사를 겸한 축하 댄스파티, 대형 오케스트라의 왈츠곡 연주에

맞춰 쌍쌍이 짝을 지어 돌아가는 무대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같은 Table에 앉았던 남미에서 온, 가슴이 내 머리보다 더 컸었던 어느 부인이 정중하게 제의를 해 왔다.

"May I have a dance with you?"

"Oh, No, I could't, I don't know how to dance"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가우 뚱하고서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남미 문화권에서는 춤이 생활화되어 있어서인지 이런 자리에서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춤을 출 줄

모른다고 하자 이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모양 같았다.

이후 꼭 춤은 배워보리라고 다짐을 했건만 아직까지 이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제는 너무 늦어 버렸다.

값비싼 턱시도가 빛을 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만 무산시켜 버려고 말아서 지금 생각해 봐도 무척

아쉬웠던 날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각국에서 온 일행 150여 명은 전세 비행기로 멕시코 칸쿤으로 날아갔다.

한 주간 내내 생애 최고의 호화로운 호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최고의 셰라톤 호텔, 전망 좋은 바닷가 방, 먹는 것은 물론 마시는 음료와 심지어 주류까지도

목걸이만 보여주면 모두가 공짜였다.

지금이야 경험도 많이 쌓였고 그 정도로는 놀랄 일이 아니겠지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흥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거기다가 호스트 역할을 하느라고 바쁜 멕시코 사장 때문에 외톨이인 본인이 자연스레 멕시코

사장 부인의 Parter가 되어 버렸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 있어 부인의 외모와 스타일은 여기서 논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3일 차 영어로 해야 하는 주제 발표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먹고 마시고 노느라고 그만 다 잊어버렸다.

오전에는 세미나 오후는 Entertainment로 일정이 매일 짜여 있었다.

첫날은 Sport 날이었는데 본인은 Tennis를 택했다.

미국 회사의 Computer 담당 부사장과 한 조가 되어 복식으로 참가했는데 우리 조가 우승을 차지했다.

둘째 날은 Beach Day , 요트, 카누, 수상스키, 윈드서핑 등 모두를 돌아가면서 하였는데 마지막 Sail Gliding에서는 희망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군 시절 힘들게 받았던 공수훈련을 회상하며 용감하게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 장비에 몸을 묶었다.

보트가 바다 위 50m 상공을 끌고 가기 때문에 요령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단지 착지할 때 강하게 양팔로 로프를 펼쳐 낙하 속도를 줄여주기만 하면 되었다.

20여 분을 카리브해 상공을 나는데 제법 깊은 곳은 오래전 침몰한 배의 잔해와 돌고래의 유영도 하늘 위에서 지켜볼 수가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에메랄드빛 Cancun Beach를 혼자서만 하늘 위에서 원 없이 즐기고 내려왔다.

그것도 사뿐히, 물속이 아닌 모래사장 위로 착지하니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던 일행들의 박수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틀 연이어 Hero가 되다 보니 참가자들이 마주치기만 하면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 주었다.

어쨌든 기분이 마냥 좋기만 했다.

삼일 째 날은 마야 유적지 관광과 민속 공연 관람, 그리고 저녁에는 대형 요트 위에서 Dinner와 함께하는 댄스파티가 있었다.

선인장으로 만든 멕시코 전통주 '테킬라' 덕분에 셋째 날 일정을 그만 망쳐 버렸다. 민속 공연장에서 전통 복장을 한 무희들이 목걸이 잔에 테킬라를 따라 주었는데 이놈을 겁도 없이 홀짝홀짝 제법 많이 받아 마셔 버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알코올 도수가 50도 가까이 되었다.

일어나 서둘러 로비가 내려가 보니 선상 파티를 하는 배가 시간에 맞춰 출항해 버리고 없었다.

부루스를 추지 못하면 개다리 춤이라도 한 번 추고 오려고 하였는데,,,,

나하고 댄스 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대신 혼자서 백옥 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비치를 걷다가 톱 레스 여인들의 가슴만 실컷 감상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날은 종합 평가의 날, 시상식도 함께 있었다.

처음으로 호명된 인기상,

"Mr, Kim from Korea!"

그때 부상으로 받은 사향노루 뿔로 만든 조각품, 지금도 비록 오랜 세월로 인해 먼지가 잔뜩 끼었지만 서재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Cancun을 떠나면서 남긴 한 마디

"내 평생 또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Bye Bye , Canun!"


2016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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