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가을

by 김 경덕

19년 가을

사계절 중 가을이 제일 인색하다.

왜냐하면 스치듯이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다.
금년 가을은 더 유별나게 나에게 궁색을 떠는 것 같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키던 잠자리를 달포 간 비웠더니 등을 돌리고 저만치

앞서 가 버렸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더군다나 붙잡을 수도 없는 무위의 시간이다.

지나가는 가을을 거꾸로 만나보려고 오늘은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스치고 지나가는 차 창가의 풍경은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에 눈에

익숙한 곳들이다.

그렇지만 오늘 지나쳐 가는 창가의 풍경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마치 새로 구입한 신간 서적을 끝 단원부터 읽어가는 그런 기분이다.
아무려면 어떻나?
처음부터 읽거나 거꾸로 읽거나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인데.,,,,

한 해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벌판은 편안하게 누워서 만추의 양광을

즐기고 있다.
여름 내내 먼길을 달리 온 강물도 도타운 가을 햇살 아래 민낯을 드러내

놓고 한 숨을 돌리고 있다.
맑은 강물에 얼굴을 씻은 가을바람은 무슨 말을 그리 하고 싶은지 창가로

찾아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빛바랜 북쪽보다는 남으로 내려갈수록 추색이 더 완연하다.
먼산에 저 마다 단장을 하고 고개를 내민 단풍들도 연륜이 쌓일수록 품위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해야지...


자연은 가만히 두면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간다.
어리석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일수록 더

신비하고 조화롭다.
수행하는 노승처럼 입을 굳게 다문 소나무가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멀어졌다 한다.
이 노송들의 얼굴에서 풍겨져 나오는 향기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옛날에는 산속에 들어가면 솔잎 향가장 깊어서

코를 벌렁거리며 맡아보곤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이 향기가 우리

주변에서 귀해져 버렸다.
손가락 만한 송충이도 이 품이 좋아서 많이들 자랐고.....

이놈을 잡으려 우리는 공부도 포기하고 산으로 올라갔었는데...

창가의 가을이 나도 모르게 추억 속의 가을 속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고향 들녘에 허리 굽혀 일하시는 아버님의
모습도 보이고
머리에 흰 수건을 덥어쓰고 논두렁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는 어머님의 모습도 보인다.

"강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먼 남도 천리길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밀양이 고향인 이 시인은 강 건너 김해 땅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하던데.....

이제는 내가 나그네 되어 오랬만에
남도 땅 김해를 가기 위해 강을 건너간다.

2019, 11, 12
고향 선산 일로
남행 열차 타고
오랬만에 고향 행차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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