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다.
금길 은길 밟고 올라 전운을 차자하니
구만리 하늘 끝에 백운장치 되었구나
만폭동 깊은 골짝에 풍악소리 절로 나네
송강 정철의 '만폭동'이다.
중학교 시절 국어책에 실린 옛시조다.
호암미술관에서 정선 겸제의 진경산수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상상만 하고 있던 금강산 '만폭동'을 직접 그림으로 대하니 옛 기억이 되살아 났다. 한번 마음속으로 더듬어 읊어 보았더니 전문이 연결되는 듯했다. 혹시나 해서 원본과 바로 대조해 보았더니 역시다. 많이 틀렸다. 이제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 보다.
눈으로는 온 산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코로는 청매, 홍매의 가녀린 향기를
머리로는 겸재를 따라 금강산을 유람하며
귀로는 만폭동의 물소리를 원 없이 들었다
겨울옷을 처음으로 벗어던진 화창한 봄날이다.
'청풍은 유수를 날리며 몸 가로 돌고
명월은 송백에 깃들고 강산은 옛 빛을 머금었네
세월이 물같이 흘러가니 이 몸이 어찌 늙지 않으리
-작가 미상-'
몸은 비록 피곤하였지만 한 없는, 아쉬운 여운이 남는 봄날이 이렇게 또 지나간다.
2025, 4. 봄날에
에버랜드 호암 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