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
네 번째 청량산 산행이다.
이 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 겨드랑이 속에 끼어 있어 오른쪽으로는 태백산을 왼쪽으로는 소백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 속에 겹 만년은 두고 핀 연꽃이 청량산이고 이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가람이 청량사이다.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이 산을 왼쪽으로 끼고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호까지 흘러 내려간다.
그래서 산 절경, 물 절경, 절 절경, 3절이 이 지역에 다 모여있다.
퇴계 이황은 어린 시절 숙부가 세운 사찰 초입의 청랑정사에서 수학을 하였다.
선생은 이곳의 경관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이곳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매우 꺼려하여 함구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당신은 여기에다 吾家堂 즉 우리 집과 같다는 별칭을 붙어놓고 혼자서만 주변 경관을 독점하려고 하였다. 아무리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선생이었지만 대 자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도 때 묻지 않은 이 지역을 세상에 선뜻 소개하기 싫었다고 훗날 피력하였다.
이제는 하늘 아래 숨길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귀한 자연 유산을 어떻게 숨기느냐가
어려운 게 아니고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느냐가 더 큰 문제이다.
자연경관이 아무리 빼어날지라도 말 못 하는 자연과 우리는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대화를 하고 싶으면 일단은 우리가 직접 찾아가 대면하여야만 한다.
이 3절과 대화를 하고 싶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이곳을 향하여 진새벽에 집을 나셨다.
어두움을 서서히 밀어내며 동녘이 밝아오자 생각지도 않았던 안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였다.
때론 위험할 정도로 앞 길을 가로막았다.
왜? 우리가 가는 길을 가로막느냐고 화를 내었더니
뜻밖에도 안개가 대답을 하였다.
"안개가 짙으니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지?
라이트(눈)를 켜라!
이 놈아!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먼 곳에 있는 것까지 보겠다고?
이 어리석은 친구야!
너는 오늘 무엇을 보려고
새벽부터 설레발을 치고 있느냐?"
그래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서둘러 산길로 접어들었다. 1km 남짓 올라가니 청량정사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건물 다실에서 차를 끓이는 다향이 코끝으로 스며들어 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다실을 지키는 선사가
"네, 그냥 드시는 차입니다."라고 하셨다.
미안함에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어 벽에 전시해 놓은 시작들을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산행의 화두가 될 것 같아 얼른 머릿속에 훔쳐 넣었다
"視 볼 시,
見 볼 견,
觀 볼 관,
오늘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보는 깊이로 따지면 순서가 바뀐 것 같다. 볼 견은 눈에 보이는 데로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영어로는 see이고
볼 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물을
보거나 관찰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look이나 watch가 될 것 같다.
그러면 볼 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view, observe?
약간 애매하다
관광할 때 관이면 너무 가벼운 것 같고,
관찰할 때 관이면 너무 과학적이라 딱딱하고,
관조할 때의 관으로 내심 정해놓고
건너다 보이는 청량사 본전을 향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불가의 시설물 중에서 좋아하는 것은 사천왕상이다. 대부분 사찰에는 사천왕문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다문천왕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불행히도 이 절에는 사천왕문이 없었다. 내려올 때 보니 일주문은 절벽으로 돌아앉아 있어 선남선녀가 지나갈 수가 없었다. 청량사는 진입로가 너무 가파르서 몸이 비대한 사천왕들이 도저히 올라 올 수가 없어 모시지 못했을 것으로 나름 추측을 해 보았다. 또 다른 이 사찰의
특징으로 여기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전 대신 유리보전(약사전)과 지장전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볼 觀 관의 주제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한 곳에 눈이 멈추었다. 사찰의 작은 마당 끝
벼랑 위에 세워 놓은 5층 석탑이다.
석탑이 중생들 몰래 청명한 가을 하늘과 정분을 나누고 있었는데 오색으로 물든 주변 봉우리들이 다 같이 합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로마 베드로 성당 천장의 천지창조화처럼 탑 끝의 가장 날카로운 손가락으로 하늘의 제왕 태양과 정기를 나누고 있었다.(사진)
오늘 나들이에서 잡은 최고의 행운이다.
見도 視도 아닌 觀을 드디어 잠사나마 바라보고 서둘러 산사를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인 농암종택 앞 낙동강 바래기 길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2025,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