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눈물

by 김 경덕

허망한 눈물

일 전 대전 국립 현충원을 다녀왔다.
교회 내 같은 소 공동체 지인의 부군 추도식에 우리 부부가 동참을 하였기 때문이다.
함께 고인을 추도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깊은 하루였다.
추도식을 끝내고 돌아 나오면서 인근 묘비에 새겨진 이름들을 무의식적으로 읽어 나가고 있었다.
그중에 낯익은 이름이 보여 발길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해병 소장 박 ★★ .
나의 신병 훈련 시절에 교육기지 사령관이었던 사람이다.
지난날의 고인에 대한 추념보다는 묘한 억 감정이 순간적으로 가슴속에 갑자기 솟구쳐 올라왔다.
우리는 속칭 김신조 군대다.
68년 1월 청와대 앞에서 북한에서 보낸 게릴라들이 난동을 부린 바로 다음 달에 입대를 하였으니
그 긴장감이 오죽했으랴...
연이어 동해서 푸에블로호 납치사건도 일어나고...

이즉까지 살아오면서 배가 고파 잠을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린 적이 내 삶 속에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신병훈련소 시절 때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병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된 주 부식을 윗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너무 많이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50% 이상 납작 보리쌀로 밥을 지어서 끈기가 없어 바람에 날릴듯한 밥 한 공기,
엉터리 된장에 무 몇 쪽 넣고 끓인 된장국 한 그릇,
점심때만 밥그릇 위에 김치 몇 쪽이 붙어 있었는 게 부식의 전부였다.
평소에 먹는 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대도 밤만 되면 두고 온 바깥세상의 음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모두 다 지나간 추억이라 쓰라리고 허망했던 배고픔을 다시 되뇌고 싶지가 않지만....
고인의 무덤 앞을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요?
허기진 배를 틀어 안고 점심시간에는 쉬지도 못하고 당신이 단상에서 후려치는 골프볼을 줏으려고 팔각 모자를 벗어 들고서는 연병장 구석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영원한 해병이잖아요.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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