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

by 김 경덕

유럽 1

"가슴이 뛸 때 부지런히 다녀라, 다리가 흔들릴 때는 이미 늦었다"

비슷한 년 배의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자주 듣거나 하게 되는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본인이 갖고 있는 확고한 여행 기술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라"라는 비교적 간단한 문장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인 1983년 봄이었다.

당시 중동 지역에는 이란과 이락이 사드 알 아랍 수로 분쟁을 빌미로 아랍

맹주를 다투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사우디 동부에 위치한 담맘에서 상사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머무르고 있을 때이다.

중동 지역의 군수품 중 주로 Soft ware를 취급하고 있을 때인데 엉뚱하게도

터키의 한 거래처로부터 관광버스 100대 Offer 의뢰가 들어왔다.

상담이 심도를 더해가면서 Buyer 측에서 국내의 생산 시설을 방문하는

절차까지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터키의 관광 산업은 유명 대 도시를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터키의 안전 법규에 따라 리무진 버스는 비상용 뒷문을 필히 설치해야만 했다.

국내에서 제작하는 관광버스는 이러한 비상문이 없었다.

이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던 중 느닷없이 터키 측 회사의 회장으로부터 우리

부부를 이스탄불로 초청하는 초청장이 날아왔다.

얼마 동안 망설이며 생각하다가 아내에게 동행해 줄 것을 제안했다.

"가는 건 좋은데, 애들은 어떻게 하고요?"

현지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었다.

"알코바에 사는 선배 언니한테 한 번 부탁해보자"

약 20km 떨어진 인근 알코바에 대학 선배 언니가 살고 있었다.

중동 근무가 끝나고 나면 귀국 길에 가족과 함께 구라파 주요 도시를 한 번

둘러보기로 진작부터 마음은 먹고 있었다.

그때를 준비하느라고 구라파 관련 각종 여행 자료는 틈틈이 모아 놓고 도상

여행을 자주 해 보곤 했다.

'계획은 남이 모르도록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해병대 시절 배운 적진 침투 개인 수칙이다.

계획은 급속도로 진척이 되었다.

공적인 일정은 이스탄불, 앙카라에서 3일 만에 마무리를 짓기로 하고 다음은

사적인 일정으로 스위스 취리히-독일 바덴 바덴(라인강 유람선 승선) - 로렐라이 -

하이델베르크 - 퀠른 - 로테르담(유람선 하선)-파리를 경유하는 약 12일간의 다소

빠듯한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출발 날짜를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3월 하순으로 늦추어 잡았다.

왜냐하면 라인강 유람선이 3월 20일부터 출항을 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고 미안하기는 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눈만 대굴대굴 굴리는 고만고만한

애 둘을 선배 언니네 집에 꼭 보릿자루 맡기듯 맡기고서는 3월 22일 날 아침 신명 난

우리 부부는 인근에 위치한 'DHARAN' 국제공항으로 달려 나갔다.

*터키*

출발 이틀 전에 구라파 전역의 늦 추위로 라인강이 해빙이 되지 않아 우리가 예약한

3월 25일 자 유람선의 출항이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스탄불행 비행기 안에서는 변경해야 할 새로운 여행 일정을 구상하느라 한 짬도 쉬질

못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가야 할 목적지를 대충 구상해 놓았다.

자유여행은 이래서 자유로운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첫 출장지 이스탄불은 자유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동행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이 필요했다.

옛 콘스탄티노플, 동 로마의 중심지, 십자군 전쟁, 정도에다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면서 이루어낸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 정도의 기본 상식뿐이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셰라톤 호텔, 시가지 인근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나리의 남산 어린이 회관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낮에는 비즈니스 미팅으로 나가고 나면 아내 혼자였다.

물론 하루는 상대측 파트너의 부인이 아내를 안내했지만 어디로 데리고

다녔는지 알 길이 없다.

이스탄불까지 갔으면서도 소피아 성당을 아내에게 제대로 관광시켜주지 못했다.

당시에는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몰랐던 때였나 보다.

그 후 나는 두 번이나 더 이스탄불에 갔지만 이 성당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눈도장만 찍고 왔다.

그렇지만 저녁 시간은 화려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동편 쪽 연안의 언덕 위에 자리한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연 이틀 만찬을 즐겼다.

만찬 중 벨리 댄스가 가까이 다가와 나의 목을 끌어안고 배꼽을 흔들어대는

벨리 댄스의 황홀감도 맞보았다.

이곳 고급 레스토랑의 대부분의 요리를 손님이 바라보는 테이블 곁에서 직접

조리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먹을 양과 호, 불호를 즉석에서 결정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낯선 음식에 대한 불안감이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무식하게 실수를 마지막에 저 지려고 말았다.

꼭 베트남 밀짚모자 같은 동판 깔때기를 들고 새로운 쿡이 다가왔다.

" * * 카페? " 커피 코스라고 동행한 현지 파트너가 설명해 주었다.

옆구리에 찬 전대에서 커피 원두를 한 줌 집어 깔때기 속에 넣고서는

즉석에서 커피를 때우듯이 볶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익힌 다음 다른 쪽에 차고 있던 방망이로 커피를 갈기 시작했다.

이때 맡아본 터키식 원두커피의 기막힌 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음으로 물 나오는 꼭지가 긴 아랍 형 주전자로 물을 부어 깔때기 끝으로

흘러 보내니 찌꺼기를 거르지 않은 커피가 작은 잔속에 모아졌다.

Guester인 나에게 첫 잔이 돌아왔다.

꼭 우리나라 소주잔만 한 크기였다.

하도 작아 겁 없이 홀짝 마셔 버렸다. 입안에 찌꺼기가 남아있어 물로 다시 한번

가글을 해야 할 정도였다.

"* * more?"

"yes!" 나는 무지하게 독한 커피를 연속 두 잔을 마셨다.

이렇게 무식하게 마신 커피 덕분에 황홀한 이스탄불의 첫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야

하는 고초를 치러야만 했다.

2016년 1월 21일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