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5일 장터는 나의 어린 시절 꿈의 공간이었다.
매 3, 8일에 아랫마을, 기우막(雁幕)에 5일장이 선다.
전날 2,7일에는 구포 큰 장이 서고 연이어 다음날 서는 작은 장이다.
어른들의 다짐도 무시하고 이 날은 하교 길이 멀리 돌아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장터를 한 바퀴 돌아본 후 귀가를 하곤 하였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이 공간을 마음껏 노닐다가 돌아왔다.
보름을 이틀 앞둔 오늘 아침 새벽부터 내리던 차가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내를 부추겨 빗속에 무작정 집을 나서니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맘 내키는 대로 핸들을 꺾다 보니 차는 어느새 서해안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 있었다.
내심 안면도를 작정했지만 이런 스산한 날씨에 바닷가에 나가면 마음이 더 차갑게
느껴질 것만 같아 해미 I.C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로 바꿔서 탔다.
서산 18km라는 이정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보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산 장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름용 나물이나 장만해 볼까 하고
차를 서둘러 몰아 서산 방향으로 다시 올라갔다.
우산을 펼쳐 들고 '서산 동부시장'이라고 세워놓은 아취를 지나서 들어가니
몇 년 전 지나는 길에 한 번 들어가 본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근대화 작업으로 밝은 조명이 내리비치는 세련된 장터는 내가 찾는 꿈의 공간이 아니다.
서산 시장은 아직도 옛 시골 시장의 정취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반듯한 건물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가계보다는 시장 뒷골목이나 입구 난전에 앉아
오목조목 몇 가지 보따리 물건을 펼쳐놓고 앉아있는 시골 할머니들이 나의 관심사이다.
한 바퀴를 돌아보니 찬비를 겨우 피해 어느 건물 처마 끝에 몇 명의 시골 할머니들이
고만고만한 야채와 곡식들을 펼쳐놓고 지나가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이거 진짜로 차조예요?'
'그럼 내가 먹으려고 두었다가 손주 오면 용돈 주려고 갖고 나왔지.'
'이건 무슨 나물이예요?'
'머위 데쳐서 삭힌 건데 쌈 싸 먹으면 맛있어! '
'건데 좀 쓰! 그래도 몸에는 좋아!'
시금치, 고사리, 취나물, 우거지, 머위, 콩나물, 냉이, 달래, 말린 호박, 말린 무
생 무, 봄동, 생률, 땅콩, 등등 서둘러 구입한 나물과 야채 들이다.
다음은 어물 장터, 장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생굴, 땅굴, 바지락, 쟁개비, 홍합, 안흥 꽃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충 합산해보니 우리 부부 주머니에 있던 현금 10만 원을 몽땅 다 쓰고
모자라서 카드까지 몇만 원 더 끓고 왔다.
뭐, 대단한 쇼핑이라고 핀잔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이 삼천 원이고 해물 종류만
만 원 단위이다.
우리 부부는 이날 보름용 찬거리만 즐겁게 준비해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먼 길을 떠난
고향 어머니들의 얼굴 모습도 함께 보고 왔다.
시골 할머니의 넉넉하고 푸근한 인심도 함께 가져왔다.
다음날 이 마음을 알았던지 아내는 이렇게 장만한 재료로 같은 교회에 나가는 이웃 어른 부부와
평소 가까이 지내던 몇 가정을 우리 집에 초대하였다.
차려놓은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소싯적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를 찾아가 할 일 없이
헤매면서 먹고 싶은 것을 쳐다보며 군침을 삼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날 서산 장에는 장날만 되면 장터에 가지 말라고 신신 다짐을 놓든 어머니도 계셨고 장에
다녀오신 후 몰래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 주시던 외할머니도 계셨다.
또 장터 난전에서 국수 한 사발을 말아 주시던 큰 어머님도 계셨다.
그때 나는 철없던 어린 마음처럼 주머니도 철없이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현금이 없어도 대신 내밀 카드도 두어 장 지갑 속에 들어있고 무엇보다도
함께 장 보따리를 들고 돌아다닐 아내도 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알고 장 보따리를 선뜻 풀어헤치고 이웃에게 대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내가 더 고맙게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오랜만에 빗속의 5일 장터를 꿈속처럼 헤매고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왔다.
201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