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레이션
그때는 모두가 다 배고프고 모든 물자가 궁한 시절이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방문 기념으로 허기에 지친 이 나라 백성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하여
각 가정마다 군용 C- 레이션 한 박스씩을 선물했다.
이 속에는 진공으로 잘 포장된 비스킷, 버터, 건과일, 고기나 스투류, 캔류,
커피에다 캔디, 껌까지 들어있었다.
그중에서 잊히지 않고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진한 국방색 캔 속에서 잘 싹은 열매와 함께 들어있던 황홀한 단맛이 나는
자두 주스였다.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이라 시골에서의 군것질은 꿈속에서나
가능하였고 단맛을 내는 것은 사카린뿐이었다.
마을 초입에 있던 친구 집에서 어렵게 캔 뚜껑을 열고 처음 먹었을 때
내 혓바닥을 자극했던 그 진한 단맛의 느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휴전이 되었으니 철없이 먹는 것만 밝힐 때였다.
아마 미 대통령이 방한할 때 조금 넉넉하게 레이션을 가져왔는지
각 가정에 한 박스씩 선물한 후 남은 것으로 우리나라 잔디 씨와 교환한다는
공고가 면사무소를 통해 우리 귀에 들어왔다.
어릴 적 자란 고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는 김해 벌판이라 잔디는 들판에
지천으로 널러있었다.
이미 레이션에 맛이 길들여진 터라 이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들은 학교 등교하여 수업을 받는 것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리고 말았다.
학교 등교는 교실이 아닌 들판의 논두렁이었다.
교과서도 제대로 없었고 교실은 물론 책걸상도 제대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라
사실상 정규 수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십리나 되는 논두렁 등굣길, 잔디가 많은 큰 둑길, 때론 학교 뒷산 이 모두가 우리들의 일터(?)였다.
한 홉을 훑어가면 C-레이션 한 팩, 잔디 씨 수집과 교환은 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눈에 불을 커고 잔디 씨를 홀기 위해 벌판과 산을 헤매고 다녔다.
어떤 형들은 너무 급하게 잔디 씨를 훑다 보니 손톱이 닳아서 구멍이 나기까지 했다.
숨 갚은 잔디 씨 쟁탈 전은 한 달 정도 지속되었고 우리들은 맛 바꾼 C-레이션으로 허기진 배를 연일 고급스럽게 채워 나갈 수 있었다.
몇 해전 장거리 산행 때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요즈음의 C- 레이션을 먹어보니 내 입맛이 변했는지 그때 그 맛과는 많은 차이가 많았다.
수년 전 출장길에 지사원들과 함께 라운드 한 미국 동부의 어느 골프장 페어웨이를 한국 잔디로 조성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훑어서 보낸 그 잔디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한 기억이 있다.
지난 일들 중 좋은 일은 추억으로 나쁜 일은 경험으로 간직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과거의 추억들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심지어 좋은 추억마저도 오래 간직하기를 싫어하는 습성들이 있다.
지난날에 우리는 극심한 가난과 고통을 경험하였고 그다음 피와 땀을 흘리며 각고의 노력을 한 덕분에 오늘의 풍요와 안정을 이 땅에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오늘은 봄을 시샘하는 꽃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때가 되면 당시의 고통들이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경험 아닌 추억으로 아련히 되살아난다.
올해도 이 봄에도 고향 땅 둑에는 우리의 꿈을 키워주던 아니 주린 배를 채워주던 푸른 잔디가 다시 힘차게 솟아 올라오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