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by 김 경덕


자운영


'노랑 장다리 밭에

나비 호호 날고

자운영 붉은 논둑에

목메기는 우는고'


중 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시의 한 대목이다.

지금쯤 남녘 땅 들판에는 자운영이 지천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화학 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운영 꽃이 핀 논 밭을 거의 볼 수가 없다.

50년대에는 바둑판처럼 경지 정리가 잘 되어있는 남녘땅 벌판에서는 자운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을 추수를 하고 난 후 자운영 씨를 비료 뿌리듯이 뿌려놓으면 이듬해 봄

이 맘때 쯤 벌판이 연 분홍 자운영 꽃으로 별천지를 이룬다.

콩과 식물처럼 자운영 뿌리에는 질소를 품은 뿌리혹박테리아가 달려있어

갈아엎어 놓으면 유용한 천연 비료 역할을 해준다는 유익한 식물이다.

우리 집 사랑채에는 나와 동갑내기 '수'야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랑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온전한 이름은 기억에 남아 있지를 않고

다만 학년만은 나보다 학 학년이 늦었다.

약간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었고 무지하게 착하고 순수한 동무였다.

때론 약간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수야 할머니는

수야가 항상 내 곁에 따라다니를 원하셨다.

나는 심보가 나쁘게도 이 점을 역 이용하여 십 리 등하굣길에 수야를 내 책보자기

운반꾼으로 심심찮게 부려먹었다.

당시에는 가방이 없던 시절이라 가로 세로 1m쯤 되는 검은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다녔다. 여학생은 허리에 매고,,,

이 책 보따리를 메고 하굣길 이런저런 놀이를 하려고 하면 여간 거추장스럽지가

않았다. 이때마다 수야는 내 책 보따리 당번을 항상 도맡아 해야만 했다.

어느 해 봄날 자운영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 우리는 자운영 꽃 밭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운영 꽃을 보고 몰려던 벌 때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검정 고무신을 벗어 들고

벌 때 사냥을 시작했다. 벌을 잡아서 허리를 자르면 그 속에 눈곱만 한 꿀이

들어 있었다. 그게 우리들의 사냥감이었다.

아무리 적은 벌 들이지만 이 들은 벌침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꽃에 앉아서 꿀을 모으고 있는 벌에게 고무신을 벗어 들고 가만히 다가가

고무신 속으로 재빠르게 벌을 낚아챈다. 그리고선 허공에 열 바퀴 정도 빙빙

돌린 후 땅바닥에 쾅하고 내려친다. 그런 다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벌을

집어 들고 허리를 잘라 벌꿀을 뽑아내 입으로 가져간다.

간단한 것 같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제법 요령이 필요한 벌 잡이 순서이다.

이 요령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수야는 어느 날 벌 잡이를 하다 잘못하여

벌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말았다. 그것도 얼굴에,, 더군다나 곰보 얼굴에,

수야 얼굴은 금방 퉁퉁 부어올랐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자부하면서 바라볼 때마다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시시덕 그리면서 그날 수야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수야 할머니는 부어오른 얼굴에 오줌을 발랐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아침 수야의 얼굴은 더 부어올라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야 할머니는 이런 수야를 나에게 내리고 와서는 사정하다시피 학교에

조심해서 좀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수야의 얼굴은 부기로 인해 눈이 가려 그냥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이 날 만은 수야 책 보따리를 내가 대신 메어 야만 했다.

처음에는 손을 잡고 동구 밖을 나셨지만 좁은 논둑길에 들어서자 둘이

나란히 걷기가 힘들어 손을 놓고선 혼자 걸어가게 내 버려뒀다.

대신 두 손을 들어 눈 꺼플을 밀어 올려서 볼 수 있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희한한 모습을 쳐다보며 우리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놀려댔고

수야는 여러 차례 도량에 처박히면서 아무튼 학교까지는 따라왔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면서 어느 해인가 수야는 할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나의 뇌리에서 수야의 모습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웬일일까?

사무친 추억이나 경험도 아닌데 자운영 꽃만 보면 수야의 얼굴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금도 수야는 어느 하늘 아래서 옛날처럼 착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한 번 만나 보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수야"

"미안해"

201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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