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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은 Nov 16. 2023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

아날로그 감성




손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밥을 먹는다.

아이를 안아주고 손잡아 준다. 



사람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 손으로 글씨를 쓰고, 나무를 자르고 타자를 쓸 수 있다. 손을 통해서 정말 많은 일이 거쳐감을 느낀다. 여전히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불편하다. 수술을 할 수도 없다. 임신 중이어서.. 이대로 몇 개월간 버티다가 할 생각이다. 타자의 속도가 여전히 느리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깨닫고 살게 되어 감사하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이 내게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나서 몇 분 뒤에 그 단맛에 끌려 또 마시고 싶고 하는 그런 기분은 아니지만, 내게 삶의 기쁨과 원동력을 주는 통로라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한 그림이기보다는 나를 위해 내가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일과이다. 그림을 그저 빠르게만 그릴 수 있는 포토샵 작업이라든지 일러스트에 힘을 빌려서 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펜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고 여러 터치감과 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낀다. 배터리가 없을 때도 있고 또한 여러 가지의 이슈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곳 남아공에서는 종종 전기 부족으로 인해 전기를 차단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면 밝은 대 낮에도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림을 직접 손으로 그리는 밝은 날에만 한다면 전기 없이도 가능하다. 순전히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사람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힘과 노력과 가만히 진득하니  앉아서 그릴 수 있는 집중력,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이렇게 매력적인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의 힘이 없이 말이다. 전기나 인터넷의 도움 없이도 가능하다. 뭔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일과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시점에서는 특히 말이다. 


풍경화를 집에 걸어두고 싶다면 인쇄소를 잘 선택해서 화소 높은 인쇄로 크게 출력하여 멋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면 된다. 그런데 굳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사람의 손을 거쳐서 그려진 그림과 보이는 감동의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이걸 진짜 손으로 그렸다고?”라고 할 정도로 허를 두르며 사람의 손으로 한 일에 대한 감탄과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쇄하는 기계는 사실 인쇄를 정확히 하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나거나 인쇄에 줄이 가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난감하여 수리하여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특정한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선연습에서부터 붓을 잡는 방법과 물감의 재료에 대해 연마에 의해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작업을 수시간 동안 그릴 수도 있다. 그만큼 시간과 사람의 노력 그리고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쇄의 사진과는 다른 손맛이 고스란히 깃든 창조물이 아닐까 한다. 





단연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유명해질 수도 있고 그냥 방 한편에 이곳저곳 널려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사람의 손을 거친 그림이라는 것은 뭔지 모를 기억을 회상하는 도구요 감수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다섯 살 때 A4용지 가득 뭔가를 잔뜩 그려놓고 자기의 방의 벽을 마치 갤러리 삼아 조심스레 연달아서 붙여놓은 적이 있었다. 엉성해 보이는 선 자국 일정지 않은 사람의 크기와 이미지가 언뜻 보면 그냥 그런 아이들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림 한 장 한 장 나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속에서는 책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주말에 신나게 봤던 주인공과 친구 똘마니들의 여러 모험이 들어 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관심 있게 바라봐주면  나름의 말 못 할 이야기와 사건의 발달과 결말이 포함되어있다. 아이의 작은 손으로 그린 그림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스며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감동이고 그 사람의 손결이 느껴진다. 손 편지만 해도 요즘에는 잘 쓰질 않는다. 사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하트하고 아이 얼굴 그리는 손 편지도 초등학교 저 학년 때나 주로 받아보지 더 크게 되면 잘 그러질 안는 것 같다. 컴퓨터와 폰의 메시지 기능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빠르게 전달하고, 잊어버릴 염려 없고 메모 쪽지 편지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 너저분한 것과 집안 구석구석 정리를 하다 보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라 실제 내 몸이 머물고 있는 장소 속에서 보관이라는 개념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편리하고 신속한 것이 좋기만 할까? 그 안에 정서와 감정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손으로 연필을 힘없이 쥐고 쓰거나 힘을 주고 그림을 그리는 그런 손의 강약과 같은 손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힘이 없어 나른하고 피곤함을 이끌고 뭔가를 하나라도 그리고자 할 때 그런 약한 선과 느낌을 종이와 손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글씨 또한 쓰는 사람의 글씨체를 통해 그 느낌을 알아낼 수 있듯이 말이다. 


아이들의 손 글씨와 그림처럼 손에서 이루어지는 뭔가 꼬물꼬물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아날로그의 기분. 적당히 손 맛이 들어가야 좀 더 재미있는 느낌이다. 손으로.. 정서적으로 느긋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면 나날이 얼마나 흥미롭고 풍요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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