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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은 Jan 19. 2024

아이가 넷이라고?

네 자녀의 엄마라는 건..



아직 넷째는 뱃속에 있지만..



처음부터 아이를 이렇게나 많이 가질 생각은 없었다. 남자아이들 두 명을 키우다 보니 자기들끼리 너무 잘 노는 모습에 늘 행복함을 느낀다. 자녀를 단순히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키우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내 생각과 행동이 조금씩 변화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살던 곳을 떠나 타지에서의 공간적인 차이와 변화로 인해 나의 일면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부족한 나에게 이렇게 자녀를 많이 주셔서 감당하게 하심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가 사는 곳은 평화롭게 자연이 펼쳐져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이라는 곳이다. 공간이 허락하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이유도 있다. 사실, 이러한 여러 조건들 보다도 나의 마음이 많이 평화로워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공간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에 따른 마음 가짐도 또한 그러하다. 자연은 늘 한결같아 보인다. 그러다가 계절이 변화하고 날씨가 변하면서 각각에 따르는 내 옷과 신발도 바뀌게 된다. 하지만 늘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다. 쉬지 않고 변한다. 결코 쉬는 법은 없다. 마치 나를 보며 해가 뜨고 바람이 불어주며 비가 내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늘 바라보는 자연이지만 내게 주는 감동은 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서울에서의 빡빡한 일정과 계획들은 어찌 보면 내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하고 싶어 짜아낸 매일의 일상과도 같았다. 결혼 후의 삶이 아이를 길러내면서 나의 생활과 삶에 큰 변화가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남아공에서의 삶은 내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따르는 무게가 있기는 사실이었지만 스스로 더 커있음을 느끼는 하루하루이다. 

 


애들 바쁘게 뭘 조립하는 중..




<자녀가 셋, 넷일 때 받는 기쁨과 고마운 점>


아이들끼리 너무 잘 논다. 

특히 두 살 터울인 첫째와 둘째는 늘 단짝이다. 남자아이들이어서 공통사와 관심사도 비슷한 것도 한 몫한다. 그리고 5살 정도 어린 막내 아이랑은 좀 귀찮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나름 큰 아이들이 챙겨주는 식으로 해서 지낸다. 


엄마의 시간이 넉넉해진다. 

혼자 글을 쓰거나 틈틈이 그림을 그릴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이 스스로 잘 놀고 있다면 한두 시간 그저 지나간다. 서로 엉켜있게 해 두고 난 잠시 글쓰기나 그림 그리면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숨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아이들의 수가 많아 더 챙겨야 하는 일과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름대로의 규칙과 계획은 경우에 따라 보이지 않는 무질서 가운데 생기게 되기 마련이니까. 예기치 않는 돌방상황도 발생한다. 얘를 들어 아이가 장난치다 좀 다친다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지만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큰애와 둘째 아이를 믿고 신뢰한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아는지, 내가 잠시 다른 방에 가 있을 때 나를 흉내 내곤 한다. 자신이 마치 리더인 양 그렇게 규율을 만들고 규칙을 정한다. 큰애가 작은애에게 작은애가 아래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틈틈이 일을 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이 서로 규칙을 배우고 터득하며 알아간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과 넷이,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일이 생기게 된다. 아직 넷째가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마치 넷째도 이 공간에 있는 것처럼 대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물론 티격태격하며 서로 부딪히는 일들도 있지만 그 안에서 알아서 조율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나와 아이 단 둘이만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늘 집안에서 엄마와 자신과의 관계만 알게 될 것이다. 친구와의 관계와는 다른 같은 한 지붕 안에 형제가 서로 옥신각신하며 서로가 자신이 먼저 말하겠다고 하는 그런 상황이 늘 연출이 된다. 형과 동생과의 좋은 습관과 나쁜 모습들을 그 아래 동생도 자라면서 배워나간다. 엄마가 가르칠 수 없는 그런 면들을 형과 동생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류를 하고 자라나 간다. 이러한 점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사람 사는 집안 같다.

가끔은 고요한 집에서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싶다가도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동에 그런 작은 소망도 사라진다. 하지만 적막한 남아공 더반에서 가족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어찌 보면 외딴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과 같은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는 소리로 사람들 북적대는 그런 사람 사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아이들로 인해 이 적막함을 깨어주고 내가 졸고 있다가도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다. 


몸은 힘들지만 기쁨이 샘 쏟는다. 

이건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활력소라고 해야 할까? 엄마의 기쁨과 활력소가 곧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외부로 일하는 엄마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라는 공간과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집안 분위기는 기쁘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라는 것은 내가 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바쁘고 때론 정신없게 스스로를 트레이닝하는 법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운동을 하듯이 그렇다. 바깥 햇살을 받으며 걷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러닝머신을 달리거나 좀 속도를 내서 걷게 되면 기분이 날아가듯이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약간은 몸을 피곤하게 했을 때 오는 상쾌한 느낌이 좋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자아이들이기에 엄마 마음을 몰라줘 속이 상할 때도 있고 몸이 가만히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두 살짜리 셋째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지만, 하루가 끝나갈 무렵 한 7시쯤 되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오늘 하루도 값지게 잘 살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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