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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25. 2020

소중한 시간의 기록

나와 너의 마주함은 그렇게 새겨진다. 


지난해 연말, 하루 동안 320장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작가도 아니고 낯선 타지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이것은 평범한 일상의 기록일 뿐이다.      


요즘 나는 사라질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커졌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 가는 것이 아쉬워지는 연말로 가면서 나의 사진 찍는 양은 점점 늘어났다. 새해가 임박한 12월이 되자 급격히 많아지더니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은 저만큼을 찍고야 말았다. 마치 내일 누구든 사라질 것처럼 나의 모습과 타인의 모습을 담는 것에 나는 열중하고 있다.      


주변인의 사진을 찍다가 느낀 것은 대부분 사진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겨지는 것을 피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사진을 함께 찍겠다고 하면 당황해하며 불편함을 표출한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이 담긴 막무가내 사진 찍기가 매번 지속되고 그렇게 한두 번 사진 찍기를 허용한다. 그리고 촬영한 사진들을 지속해서 그들에게 보내주다 보면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셀카 모드로 핸드폰을 들면 예전에는 어색해하던 사람들이 사각 프레임 안에 모두 얼굴을 들이미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 직전, 사진 찍히기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는 이러하다. 


처음인 사람:  “갑자기 지금? 사진을 왜?” 


익숙한 사람: “사진은 갑자기 찍는 거야~!”


익숙한 사람은 순식간에 웃는 표정으로 바뀌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엉겁결에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우리는 프레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처음에는 무표정이었던 사람도 재차 찍다 보면 어느새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사진 찍기의 익숙함을 넘어 함께 즐기는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부모님도 나의 이 행위에 익숙해지셨다. MRI를 촬영하러 들어가는 문 앞에서 느닷없이 사진을 찍자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자 프레임 안에서 검진복을 입은 채 미소 짓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우리의 지금은 소중하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을 걷고 있을 때 나는 가능한 한 우리의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다. 나의 한정된 뇌의 기억만으로 당신을 기억하기에는 아쉽다. 시간이 흘러 나의 기억이 점점 바래지고 희미해져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선명한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이때에 우리가 어떠했는지. 어떠한 생각을 가졌었는지. 우리의 지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은 나의 핸드폰 사진 폴더 안에 기록되어 쌓여간다. 차곡차곡 쌓인 기분 좋은 순간의 집합이다. 이 사진 속에서 자주 보이는 사람이라면 현재 나와 함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걷고 있을 때 나는 이 사진들을 꺼내볼 것이다. 나는 그때를 위해 차곡차곡 사진들을 저장한다. 가끔씩 속수무책으로 쓸쓸해질 때면 사진 폴더를 열어서 그때의 시간을 되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다시 걷고 싶다. 그러면 정지된 순간은 다시 생생해지니까. 시간의 흔적을 마주한 나의 마음은 기분 좋은 여운으로 다시 채워질 테니까 말이다. 세월이 더 멀리멀리 흐른 뒤 나의 노년기에는 사진을 하나씩 꺼내보며 우리의 젊었던 시절을 추억하고 싶다. 무언가 그리움에 사무칠 때 옛 사진들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 세월이 멀리멀리 흐른 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의 토토처럼 추억해야지. 



내가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살아있었다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함께 사진 찍기! 나는 가능한 한 우리가 함께한 순간을 프레임 안에 담고 싶다. 흐르는 시간 속. 그날 그때 그곳에서. 나와 너의 마주함은 그렇게 사진으로 새겨진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의 기록으로.           






나의 취미생활인 함께 사진 찍기. 이것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중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홀로 사진 찍기가 늘어났다.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사진만 늘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은 다른 것이 되었다. (특히 귀한 주말의 일상이 그러하다.)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라고 하지 않는가. 평범했던 일상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이 달라진 일상이 머지않아 제자리로 돌아오길. 우리가 만나 거리를 좁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봄이 오기를 바라고 바란다.

(첫번째 글의 2탄처럼 느껴지는 덧붙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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