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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Apr 15. 2018

기지가 발견한 기회

도쿄의 ‘오지 살몬(Oji salmon)’

“밖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는 가게” 


  연어 전문점 ‘오지 살몬(Oji salmon)’의 매장 컨셉입니다. 도쿄 긴자에 위치한 오지 살몬은 연어를 파는 매장을 넘어 연어를 먹고 싶게 만드는 매장입니다. 무심코 길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도 매장 외관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가게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차분한 인테리어의 매장 안에는 현대적 디자인의 다양한 연어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창문 앞에는 연어를 테마로 한 세련된 제품 패키지와 연어를 모티브로 한 커다란 네온 사인이 있어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생동감 넘치는 포즈의 연어 모양을 본 뜬 간판도 한 몫 거듭니다. 밤이면 연어 모양의 간판에 불이 들어와 더욱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약속시간에 늦지만 않았다면, 누구나 한 번쯤 호기심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매장입니다.


오지 살몬 매장 전경 ⓒ트래블코드


연어 전문점이라고 해서 연어를 이용한 요리를 내는 식당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오지 살몬은 레스토랑보다는 연어에 관련된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샵에 가깝습니다. 생연어는 물론, 훈제 연어, 연어 플레이크, 말린 연어, 연어 통조림 등 가공식품부터 연어 샌드위치, 연어 파이, 연어 샐러드 등 연어로 만든 음식까지 연어를 활용한 거의 모든 것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말린 연어처럼 산화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 제품들은 시식코너도 마련해 두어 미리 맛을 보고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을 위해 패키지와 손질에 더 신경을 쓴 선물용 제품들도 눈에 띕니다. 게다가 연어와 어울리는 각종 와인, 연어 요리에 쓰이는 파스타, 오일 등의 부재료도 함께 판매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시도해 보거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더 자주 구매할 수 있도록 요일 별로 세일 품목을 정해 두기도 합니다. 다른 제품을 사러 왔다가 세일 품목을 추가로 살 수도 있고, 좋아하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요일에 맞춰 굳이 매장을 한 번 더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추가 구매와 재방문을 유도하는 지혜도 엿보입니다.


오지 살몬의 훈제 연어 ⓒ트래블코드


방대한 제품 영역도 놀랍지만, 오지 살몬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연어의 맛을 구분한 데에 있습니다. 오지 살몬에서는 연어에도 종류가 있고, 종류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지 살몬은 홍연어, 백연어, 대서양 연어, 왕 연어, 피오르드 연어 등 5가지 연어를 취급합니다. 각 연어의 맛 차이를 비교하고 입맛에 더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같은 제품이라도 다른 연어로 만들고, 같은 연어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공합니다. 예를 들어 5가지 연어로 만든 훈제 연어는 각 제품이 어떤 종류의 연어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해당 연어의 일러스트와 맛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함께 적어 두어 이해를 돕습니다. 또한 같은 홍연어라고 하더라도 훈제, 절임, 건조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오지 살몬은 이렇게 연어의 맛을 한 가지에서 수십 가지로 확장합니다. 


매장의 감도와 제품 구성만 보고 오지 살몬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오지 살몬의 설립 배경에도 또 하나의 재미가 숨어 있습니다. 연어에 대한 전문성으로만 보면, 오지 살몬은 어업이 본업인 회사 같습니다. 그러나 오지 살몬의 모회사는 뜻밖에도 제지 회사입니다. 그 시작은 약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갔던 ‘오지 제지’라는 제지 회사의 부사장은 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보는 훌륭한 맛의 훈제 연어를 접하게 됩니다. 그는 곧 그 연어가 일본 홋카이도 산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본으로 돌아와 오지 살몬의 모체인 ‘홋카이도 연어 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종이를 만들던 회사가 훈제 연어를 만들 수 있었던 접점에는 바로 ‘훈연 기술’이 있었습니다. 훈제 연어를 만들 때 연어를 훈연하듯, 종이를 만들 때에도 나무를 훈연합니다. 오지 제지의 핵심역량인 훈연기술을 연어에 적용하여 오지 살몬만의 훈제 연어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나무와 연어는 다른 속성의 재료라 여러 번의 시행 착오는 있었지만, 핵심 역량을 응용한 기술이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고 과감하게 신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역량을 새롭게 접근하는 부사장의 기지 덕분에 오지 제지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셈입니다. 


‘오지’는 일본어로 ‘왕자’라는 뜻입니다. 오지 살몬의 제안력과 매장 구성을 보면 ‘왕자 연어’라는 상호명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우연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967년 사업 시작 이래 꾸준히 연어를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출시해 왔습니다. ‘홋카이도 산 훈제 연어’ 한 가지로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오지 살몬은 스스로를 왕자라고 부를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본 칼럼은 경제 전문 미디어 <이코노믹 리뷰>의 전문가 칼럼에 연재하고 있는 <최경희의 밑줄 긋는 여행>의 4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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