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선행학습

첫 번째 임신과 유산 6

by 황경진

연휴가 끝나자마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다음 날 있을 수술에 필요한 각종 검사와 서류 작업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자궁 수축제를 맞았는데 이 주사 한 방에 예상치 못했던 헬게이트가 열리고 말았다.

날짜를 대략 계산해보면 수술을 받을 당시 임신 11주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배아는 죽었지만 아기집이 계속 자라고 있었다면 태반이 꽤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테고 의사 선생님은 그냥 떼어내는 것보다는 유도 분만에 쓰이는 자궁 수축제를 미리 투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자궁 수축제가 어떤 증상을 유발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주사를 맞으면 좀 아플 겁니다, 혹시라도 밤에 많이 아프면 응급실로 오시고요, 라는 짤막한 설명을 들었을 뿐이다.

약발이 잘 듣는 내 몸은 주사를 맞자마자 그 자리에서 생리통과 같은 복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 아픈 거라니 참고 집에 왔는데 통증은 순식간에 온 몸을 덮쳤다. 오한이 들며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려 눈물, 콧물, 땀, 구토 등 온갖 분비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온몸이 뒤틀릴 정도로 배가 아팠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어 이불을 쥐어뜯으며 침대 위를 기어 다녔다. 만약 메피스토펠레스가 눈앞에 나타나 지금 당장 고통을 멈추게 해 줄 테니 영혼을 내놓으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영혼을 팔 기세였다.

그렇게 소리 없이 몸부림치는 동안 가족들은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 조카가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닫힌 방문을 통해서도 역력히 느껴졌다. 나는 저녁식사만큼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꽉 깨물고 참고 또 참았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싶을 때쯤 식사를 마친 엄마가 나의 상태를 확인하러 방으로 들어왔다. 실신 직전에 이른 딸을 보고 급히 아빠를 호출했고 아빠는 나를 부축해 응급실로 데려갔다. 결국 자궁 수축제를 맞은 지 세 시간 만에 다시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웬만해서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갔겠지만 웬만하지 않았던 나는 휠체어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갔고 곧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했더니 의사 선생님 왈,

"아니 수술이 내일 오전인데 자궁 수축제를 왜 이렇게 일찍 넣으셨대요?"

(아니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미 유산했고 내일 수술도 하신다니 괜히 아프지 말고 진통제 맞읍시다!"

의사 선생님은 곧 정맥주사로 진통제를 넣어주셨다. 약이 어찌나 강했는지 몸에 들어오자마자 상반신이 하반신과 분리되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반신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분리된 상반신이 공중에서 그 통증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약물이 서서히 퍼지면서 이탈했던 상반신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더 이상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옥의 고통에서 순식간에 나를 해방시켜 주다니 영혼은 악마에게 팔 것이 아니라 진통제에 팔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로 내가 겪은 통증이 진통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한다. 출산의 고통 미리 맛보기였달까. 허무하기 짝이 없는 고통이었지만 인생의 선행학습쯤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병원에서는 어차피 내일 아침에 입원해야 하니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하루 일찍 입원하라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그대로 입원실로 옮겨졌다. 엄마한테는 제발 집에 가서 주무시라 했지만 (집에서 병원까지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완강히 거절하시며 내 옆자리 빈 침대에서 나와 함께 밤을 보내셨다. 나는 약기운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고 엄마는 한 숨도 못 잔 상태로 다음 날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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