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난임 일기

몸의 복귀

첫 번째 임신과 유산 7

by 황경진

수술 전날에 비해 당일은 별문제 없이 흘러갔다. 오전 예정된 시간에 수술에 들어갔고, 수면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배에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하나 더 맞았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통증도 사라지고 없었다.

병실로 돌아왔다. 전 날 반 이상 비어있던 침대가 꽉 차 있었다. 누구는 자궁 외 임신으로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고, 누구는 심한 임신 중독 증세로 온몸이 퉁퉁 부었다. 곧 이 병실에서 제 발로 걸어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작 임신 중절 수술로 병실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병원의 지침에 따라 하룻밤을 더 보내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옆 환자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두 번째 밤을 보냈다. 병실을 떠나면서는 내가 겪은 일은 별 일 아니다, 이런 일로 힘들어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회복도 순조로웠다. 2차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더니 자궁 수축제 덕분인지 1차만으로 잘 해결되었고 피고임이라던지 다른 부작용도 없었다. 칸디다 질염에 감염되어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약물로 치료가 가능해 병원에 다닐 필요는 없었다. 2주 후 더 이상 진료가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고, 그로써 나의 몸은 3개월 만에 임신 상태를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했다.

몸과 함께 마음도 금방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유산이 된 게 견딜 수 없이 슬펐다거나 죄책감이 든 건 아니었다. 약간의 상실감이 느껴졌지만 그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유산이 트리거가 되어 내 안에 잠재하던 여러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고일어났다는 데 있었다. 겨우 한 고개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불어난 불안 덩어리들이 더 큰 고개가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는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당시 한국을 떠난 지 만 4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의 박사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미래가 불확실했다. 병원 한 번 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미국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고, 이미 30대 중반인데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도 지쳤다. 가족이 많이 그리웠지만 수술이 끝나고 나니 부모님의 보살핌도 버겁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부모님께는 들키고 싶지 않아 몸이 회복되자마자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내 몸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의 은신처인 캘리포니아의 작은 원룸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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