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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by 황경진

내가 네다섯 살이었을 무렵, 우리 가족은 김천 한 동네의 양옥집에 세 들어 살았다. 1층은 주인집이었고 우리 집은 2층이었다. 2층에도 언니와 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널찍한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다. 매년 봄이 되면 주인집에서 심은 목련나무가 2층 마당으로 가지를 드리우고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나무는 주인이 심고 꽃구경은 우리가 한다는 매번 비슷하게 반복되던 아빠의 식상한 레퍼토리를 들으며 꽃놀이를 즐겼던 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다. 그 후로는 줄곧 아파트나 빌라에 살았으므로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잘 몰랐다.


산타페 숙소에는 나무 울타리가 쳐진 가로 열세 걸음, 세로 아홉 걸음 되는 마당이 있었다. 대문에서부터 현관까지 대각선으로 벽돌길이 나 있었고, 그 주위로 갖가지 꽃과 풀이 자랐다. 아담하고 예쁜 마당이었다. 마당 한쪽에는 완전히 누울 수도, 등을 세우고 앉을 수도 있는 라운지 의자 2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첫날 짐을 풀고 남편과 나란히 의자에 누웠다가 이곳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장소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나의 하루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의자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졸음에 겨운 고양이처럼 들뜬 눈을 하고서 의자 위에 한껏 늘어졌다. 마당은 북서쪽으로 나 있어서 오전에는 대부분 그늘져 있었지만, 의자에 다리를 쭉 뻗고 누우면 딱 발목까지 볕이 들었다. 수족냉증 때문에 여름에도 발이 차가운 나에게 안성맞춤의 볕이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부분 일광욕에 대한 만족을 표하며 오늘은 뭘 할지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볕이 다리를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면 곧 일어나야 할 때가 되어감을 알 수 있었다. 의자도 다리도 점점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해가 허리를 지나 가슴팍까지 올라올 때까지 버티다가 더는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을 때 그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마당에서 시작되는 이 평온한 일상이 더없이 좋았다.


오후에는 의자를 건조대로 사용했다. 마당에 빨래 너는 게 좋아서 일부러 빨래도 자주 했다. 젖은 수건을 탁탁 털어서 의자에 널 때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물을 뿌리는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치익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빨래를 널자마자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래는 햇볕과 건조한 공기에 힘입어 건조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말랐다. 자연 살균 건조되어 보송보송해진 빨래를 개는 것은 너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바깥에 너무 오래 두면 금세 뻣뻣해졌기 때문에 까먹지 않고 제때 거둬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마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공유했고, 해가 완전히 넘어가 마지막 한 글자가 어둠에 잠길 때까지 책을 읽기도 했다. 번개가 치는 날엔 번개를 구경했고, 비가 오는 날엔 비를 구경했다. 구름이 많은 날엔 구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구름 없이 맑은 밤엔 담요를 둘둘 감고서 별을 보았다. 세 평 남짓한 마당이 얼마나 큰 정서적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매 순간 놀라웠다.


문을 열고 한 발자국만 나가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바깥이지만 완전히 바깥도 아닌 밖으로 열린 공간이 나는 정말 좋았다. 산타페에 살면서 나중에 꼭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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