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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페의 건축물

by 황경진

산타페의 건축물은 “산타페 스타일” 또는 “푸에블로 리바이벌 스타일(Pueblo Revival Style)”로 불린다. 스페인 제국이 뉴멕시코를 점령할 당시 어도비(진흙 벽돌)로 집을 짓던 히스패닉 건축 문화가 함께 도입되었다. 여기에 원주민의 전통 주거 형태가 결합하여 지금의 양식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진흙을 바른 두꺼운 벽과 둥근 모서리, 편편한 지붕, 외벽으로 돌출된 나무 들보, 창틀과 문틀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상인방과 나무 장식 등이 있다. 요즘은 시간과 비용의 제약으로 어도비 대신 콘크리트나 회반죽 같은 현대식 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건물색이 조금 다른 점만 제외하면 다른 특징은 모두 유지하고 있어서 최근에 지은 건물도 오래된 건물과 잘 어울렸다.


현재의 산타페는 예술 도시로써 명성이 자자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폐허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미 대도시로 발달한 미국 동부와는 달리 대자연에 둘러싸여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산타페는 1912년, 뉴멕시코가 독립된 주의 지위를 획득할 무렵에야 도시 재건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오래된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당대 유행하던 최신 스타일로 도시를 새로 설계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랬더라면 산타페는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산타페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미리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고고학자와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그들은 산타페의 옛모습을 보존하고 되돌리는 쪽으로 방향을 이끌었고 허물어져 가던 건물을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현대에 맞게 재창조해냈다. 그렇게 탄생한 산타페 스타일은 수많은 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며 산타페의 부흥을 이끌었다.


산타페의 건물은 같은 스타일로 지어졌지만, 디자인은 모두 달랐다. 특히 대문과 창문은 모양도 색도 가지각색이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곳의 건물은 완벽하게 직선이거나 대칭인 경우도 별로 없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담이 왼쪽 담보다 높거나 낮았고, 넓거나 좁았으며, 두껍거나 얇았다. 대문의 들보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나무 대문은 대체로 아귀가 맞지 않았다. 어떤 대문은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이 완전히 어긋나 있었지만 어긋난 그대로 모든 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오래되어서 점차 기운 것인지 원래부터 그렇게 디자인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생긴 문들이 동일한 간격으로 늘어선 규격화된 세계에 속해 있던 나는 자유분방한 산타페의 집과 대문에 자꾸 눈이 갔다. 나무가 휘면 휜 대로, 패이면 패인 대로, 담벼락이 울퉁불퉁해도 상관없었다. 산타페의 건물을 보고 있자면 이곳의 미장이들은 대체로 쿨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벽을 툭툭 다진 후, 한 번 쓱 훑어보고서 오케이! 이 정도면 되었어!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재생되어 길을 걷다가 혼자 웃었다. 애초에 완벽한 직선이나 대칭은 자연물에 존재하지 않는데 도시에 오래 살다 보니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한껏 날을 세우며 살아오다가 모나지 않고 자연스러운 건물을 보니 힘이 툭 풀렸다. 있는 그대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곳이어서 나는 산타페가 좋았다.


산타페의 건축물은 특히 터키석 색과 잘 어울렸다. 길을 걷다 보면 터키석 색의 문이나 장식 요소가 유난히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색이 자주 쓰이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자료는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파란색 대문이 제국을 통해 전해진 것이라고 했고, 파란색에는 벌레가 잘 붙지 않아서 실용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알려주는 글도 있었다. 파란색이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고도 했고, 뉴멕시코주의 특산물이 터키석인 것과도 관계가 있을 듯했다. 유래와 의미는 어찌 됐든, 밝고 선명한 터키석 색은 어둡고 탁한 진흙 색과 찰떡궁합이긴 했다. 두 색은 보색 관계에 있어서 함께 사용했을 때 서로가 가장 돋보였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터키석 색의 문과 장식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과도 비슷한 터키석 색은 보고 있으면 청량한 기분이 들어 더운 여름날 걷는 길의 활력을 북돋아 주었다.


그러나 푸에블로 스타일로 지어진 건축물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한 형태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라고 나는 생각했다. 특히 둥근 모서리에서 빛과 그림자가 부드럽게 만나는 부분이 아름다웠다. 시내 초입부에는 직육면체 블록을 계단처럼 쌓아 올린 로레토 호텔이 있었다. 이 호텔은 다양한 면이 여러 각도로 햇빛에 노출되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변주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종종 스케치를 하곤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그림자가 계속 바뀌어 꼭 슬로 모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해 질 녘의 긴 빛을 받아 서쪽 면이 금빛으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건물에도 생명이 부여되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주 도심을 걸으며 건물과 문, 빛과 그림자를 구경했다.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 시내를 오가며 같은 길을 수없이 걸었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색과 그림자를 보느라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산타페 스타일을 완성시킨 뉴멕시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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