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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옛 수도, Santa Fe

by 황경진

우리가 묵었던 산타페의 숙소는 도시 중심부에서 2km 떨어진 마드리드 로드 위의 남쪽 끝 집이었다.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뻔한 마드리드 로드는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작은 비포장도로였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부연 먼지가 일었다가 한참이 지나고서야 다시 가라앉곤 했다.


집주인 알렉스는 본인이 거주하는 본채 옆에 딸린 작은 별채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뉴멕시코에서는 이런 별채를 까시타(Casita)라고 부른다. 스페인어로 까사(Casa)는 집, 까시타(Casita)는 작은 집을 의미한다.


길 이름과 집 명칭에서 짐작되듯이 산타페는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원주민이 살고 있던 지금의 뉴멕시코 땅을 처음으로 점령한 나라가 스페인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제국은 1610년에 지금의 산타페 자리에 수도를 세우고 약 200년간 뉴멕시코를 지배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25년간은 멕시코 지배하에 있었고, 멕시코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846년 미국의 영토로 최종 편입되었다. 산타페는 뉴멕시코주의 주도로 지내온 기간보다 스페인 제국의 수도로 지내온 기간이 훨씬 길다. 인구의 절반이 히스패닉에 해당하는 산타페는 영어만큼이나 스페인어를 많이 사용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산타페”라는 도시명도 스페인의 수도로 지정될 당시 통치자가 명명한 긴 이름에서 나왔다. 스페인어로는 “La Villa Real de la Santa Fe de San Francisco de Asis”이고, 영어로는 “The Royal Town of the Holy Faith of Saint Francis of Assis”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의 거룩한 믿음으로 세워진 로열 타운”쯤 되려나. 아마 미국인들도 잘 모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산타페의 공식 명칭은 아직도 이 길고 긴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마드리드 로드뿐만 아니라 숙소 주변의 많은 길 이름이 스페인의 도시명으로 되어있었다. 우리는 종종 걸어서 동네를 산책했는데 마드리드 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 바르셀로나 로드가 나왔다. 앙숙 관계에 있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산타페의 한 코너에서는 다정하게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교차로에서 서쪽으로 돌아 걸어가면 세빌(세비야로 알려져 있다) 로드가 나왔다. 마드리드 로드와 평행하게 뻗은 이 길 역시 비포장도로여서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산책하는 날에는 발이 새까매져 돌아오곤 했다. 세빌 로드가 끝나는 지점에는 왕복 2차선 도로인 코르도바 로드가 있었다. 코르도바 로드는 인도가 좁아서 길가의 교회 마당을 가로질러 걸으면 다시 마드리드 로드 위의 작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어야 2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걸어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세빌과 코르도바를 여행했다. 물론 좀 더 멀리 돌아서 산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이 짧은 산책 코스를 가장 좋아했다. 지금은 마드리드에 있는데 이제 곧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예정이야, 세빌 로드에는 이발사가 살고 있을까? 따위의 시답잖은 농담들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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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문장으로 장식된 Palace of Governor


마드리드 로드와 바르셀로나 로드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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