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의 아트 갤러리
이 많은 작품은 누가 다 사갈까?
산타페는 도시 전체가 미술품으로 가득 찬 곳이다.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에 아트 갤러리만 300개가 넘는다. 갤러리가 가장 밀집해 있는 구역은 "캐년 로드(Canyon Road)"로, 차 두대가 지나가는 좁은 길 양쪽으로 푸에블로 스타일로 지어진 갤러리와 부띠끄 숍이 100개도 넘게 줄지어 서있었다.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은 동묘 시장을 둘러보는 것처럼 캐주얼하게 갤러리를 구경했다. 쭉 늘어선 갤러리에는 회화, 조소, 사진 등 없는 장르가 없고, 민속 공예품부터 파인 아트(Fine Ar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작품이 혼재되어 있었다. 쇼윈도에 걸린 옷을 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갤러리 입구에 전시된 작품이나 포스터를 보고 갤러리를 선택할 수 있었고, 건물 내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조각으로 꾸며진 정원을 누구나 산책할 수 있었다. 입장료를 끊고 줄지어 들어가는 대도시의 전시회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활짝 열린 대문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이 낯설고도 신선했다.
나는 틈틈이 갤러리를 방문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는 작은 갤러리에 혼자 들어가는 게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관심 가는 작품이 보이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실컷 작품을 감상하고 나왔다. 작가가 운영하거나 스튜디오 겸용으로 사용하는 갤러리도 많아서 종종 작업 중인 작품을 볼 수도 있었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오롯이 작품을 통해서 나의 취향과 선호를 재발견하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한 갤러리를 방문했다가 젊은 부부가 그림을 구매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이 많은 작품은 누가 다 사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술관과는 달리 갤러리는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고, 작품이 팔려야만 갤러리도 작가도 먹고살 수 있을 터였다. 산타페에 머무르는 동안 일주일에도 몇 번씩 갤러리를 방문했지만 누군가 작품을 구매한 일은 손에 꼽았다. 기념품숍과는 다르게 저렴한 작품이 100만 원 안팎이고, 보통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고가의 작품은 억이 넘어가기도 하니 거래가 자주 성사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워런 키팅(Warren Keating)이라는 화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는 "비보 컨템퍼러리(Vivo Contemporary)"라는 아트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주로 누가 작품을 구매하는지, 갤러리는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작품이 워낙 비싸다 보니 작품을 판매하는 다른 경로가 있을 것 같기도 했고, 개인보다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많이 구입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워런의 갤러리는 대체로 갤러리를 방문하는 개인 구매자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산타페는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 작품을 구매하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드는 도시라고 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 정도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갤러리를 둘러보면서 본인이 소장하고픈 작품을 탐색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몇 번이고 다시 그 작품을 보러 온다고 했다. 한 번은 햇살이 반대편 바닥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늦은 오후, 오전에 방문했던 손님이 다시 찾아와 해가 다 넘어갈 때까지 꿈쩍도 않고 서서 눈물을 흘리며 한 그림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손님은 그 작품 앞에서 타인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 비로소 말을 건네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사고 싶다고.
워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침묵의 순간이 손님뿐 아니라 그에게도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순간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말없이 나타나 본인조차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림의 깊은 내면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준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큰 기쁨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교감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기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갤러리가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갤러리가 문을 연다고 했다. 멀리서 온 이방인보다는 가까이서 꾸준히 그림을 지켜봐 주고 구매해주는 후원자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도 그림을 살 뻔한 일이 한 번 있었다. 2014년 서울 한남동에서 열렸던 브리즈 아트페어에서였다. 회사 동료가 구해준 표로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 갔다가 장수지 작가의 소,녀 시리즈를 보고 단번에 반했다. 몇 번이고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옆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읽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작품이 50만 원가량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뜻 낼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조금 무리하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금액이긴 했다. 나는 그림 앞에서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은 빈손으로 나왔다.
나는 그 그림을 놓친 것을 많이 후회했다. 그림을 사지 못한 게 돈의 문제였을까, 용기의 문제였을까 종종 되뇌곤 했었는데 워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은 시간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아트페어를 방문했던 때가 마지막 날 파장을 앞둔 어수선한 시간이 아니었다면, 반나절만 일찍 그 작품을 보았더라면, 처음엔 빈손으로 나왔을지라도 결국엔 다시 방문해 그 그림을 손에 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첫 경험은 신중한 법이고, 그래서 더 넉넉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마 산타페의 갤러리에서 구매 현장을 자주 목격하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나와 함께 그림을 구경했던 누군가는 작품에 이끌려 다시 한번 갤러리를 방문하고 종국에는 작품을 품에 안고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일이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언젠가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작품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면 새로운 벗을 사귀는 것처럼 작품 앞에서 진중한 대화를 나눈 후 기꺼이 나의 곁으로 데려오고 싶다. 살면서 그런 일이 몇 번쯤 일어나는 것도 꽤 근사할 것 같다고 갤러리를 둘러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