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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포크 아트 마켓

by 황경진

산타페는 내가 방문했던 미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뚜렷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땅에 제일 먼저 정착한 원주민 문화에 이어 스페인, 멕시코, 미국 문화가 차례로 뒤섞이면서 풍성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었고, 그 양분을 먹고 알록달록한 예술 도시가 자라나 뉴욕과 LA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미술 시장으로 성장했다.


산타페의 여름, 그중에서도 7, 8월은 3대 아트 마켓으로 불리는 큰 행사가 잇따라 열려 그 어느 때보다 붐비고 부산했다. 특히 국제 포크 아트 마켓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150개 이상의 개인/단체가 참여하는 큰 규모의 국제 행사였다. 이렇게 외지고 작은 도시에 이 많은 사람과 물건이 모여들고 있었다는 게 그저 놀라웠다.


행사가 열리는 첫날은 비가 내렸다. 야외 행사라 가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후 늦게 날이 개서 차를 타고 급히 행사장으로 갔다. 출품자 및 스태프를 제외하고는 주차가 불가능해서 시내로 돌아가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해야 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비 때문에 공연도 취소되고 조금 어수선했지만 우리 같은 손님들 때문에 파장을 앞둔 시간에도 활기가 돌았다.


행사장에는 작은 부스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 등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각지에서 온 화려한 민속 공예품들이 부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옷을 포함한 실용품이 많았는데 캐시미어 상품을 파는 한 부스는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하루 만에 가져온 상품이 모두 동나고 스카프 몇 장만이 남아 있기도 했다.


여기 모인 보물들 중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물건은 양탄자였다. 나는 터키, 페루 등지에서 온 고급 양털로 짠 이국적인 문양의 양탄자에 매료되었다. 바닥에 잔뜩 쌓인 양탄자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구경했더니 상인들은 내 관심을 눈치채고 흥정에 들어왔다. 아… 하지만 핸드메이드 양탄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너무 비쌌다. 양탄자 한 장에 들어간 시간과 노고에 비하면 비싼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비쌌다. 곧 마감은 다가오고 한 장이라도 더 팔기 위해 조급해진 상인은 가격을 계속 깎아 내려가다가 결국 답답했는지 얼마면 되겠어? 하고 되려 우리에게 묻고 말았다. 상인이 그렇게 나오면 등 떠밀려서라도 하나 사주는 것이 인지상정 이건만 그때는 학생 신분이라 수중에 돈이 부족했고 무리해서 산다고 해도 양탄자을 깔아 놓을 공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격에 맞는 아무 양탄자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고민에 빠져있는 나를 보더니 남편은 다음에 양탄자를 사러 다시 오자고 제안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돈도 벌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양탄자를 맞이할 만발의 준비를 갖춘 뒤 다시 와서 제일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데려가자는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니 좋았다. 지갑에 돈을 두둑이 챙겨 와 가장 멋진 녀석으로 데려가는 상상을 하니 기분좋게 숙소로 돌아올 수 이었다. 정말로 다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제안을 해준 남편이 고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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