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된 신고식을 거쳐 5시가 넘은 늦은 오후 드디어 산타페에 도착했다. 복작복작한 시내를 벗어나 작은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레지던스 호텔이 하룻밤을 보낼 목적지였다. 한산한 주차장 옆으로 로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단층짜리 소박한 건물이었다.
먼저 온 손님을 응대하느라 곁눈 짓으로 인사를 건네는 직원과 가볍게 눈을 맞추고 회랑 벤치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건물 외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회랑에는 붉은 고추를 엮어서 말린 뉴멕시코 전통 장식품인 리스트라가 매달려 있었다. 서쪽으로 기운 해는 회랑을 넘어 로비 안쪽 깊숙이 손을 뻗쳤고 말린 고추에서는 바삭바삭한 냄새가 났다.
서두를 것 없이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따뜻한 햇볕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녹아내리며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쉬고 있자니 용무를 마친 직원이 다가왔다.
이윽고 소개받은 객실은 남편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던 산타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이었다. 흙으로 지은 듯한 아담한 건물과 패티오에 놓인 파란색 의자 한 쌍, 오래된 사다리, 도마뱀 모양의 장식품이 정겨웠다. 그림과 사진, 장식품이 잔뜩 걸린 실내는 정성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공간이었다. 거실 한쪽 벽에 걸린 조지아 오키프의 흑백 사진을 보고 첫눈에 반했고, 반대편 벽의 둥근 벽난로도 사랑스러웠다.
호텔에서의 하루는 앞으로 보낼 날들의 미리보기 같은 시간이었다. 첫날 보고 느꼈던 감각들이 확장되고 디테일이 더해져서 산타페에서의 날들이 채워졌다. 드라마틱한 전개나 깜짝 놀랄만한 반전, 스릴은 없지만, 줄곧 다정하고 작은 것들로 복작거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마음에 들었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 남은 날들을 보낼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갔다. 주인 알렉스와 인사를 나누고, 키를 받고, 차에 싣고 온 모든 짐들을 거실 바닥에 던져놓고 일단 맥주부터 뜯었다. 드디어 도착이었다. 먼 길을 달려온 끝에 산타페 생활이 정말로 시작되고 있었다.